설명이 필요 없는 포르쉐만의 바이브

브랜드를 넘어선 자동차 문화 축제, ‘포르쉐 바이브’ 스케치
아무리 포르쉐가 흔해졌다고 해도 실제 이를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포르쉐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즐거울 수 있습니다. 포르쉐를 포함한 럭셔리카 브랜드들은 한 시대가 지향하는 욕망을 정교하게 다듬어낸 작품이기 때문이죠. 10월 3~4일 양일간, 서울 마포구의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포르쉐 바이브 서울(Porsche Vibe Seoul)의 10월 2일 프리뷰와 첫 날 행사 현장을 스케치했습니다.

레트로와 첨단을 관통하는 포르쉐 바이브
바이브(vibe)는 사전적으로도 분위기나 느낌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영어 교육업에 종사하는 이들이나 원어민들에 따르면, ‘앳모스피어(atmosphere)’나 ‘앰비언스(ambience)’와 비슷하지만, 앰비언스는 그 자체로 긍정적인 의미, 앳모스피어는 ‘분위기’라는 것을 포괄하는 의미인데 비해 ‘바이브’는 직관적이되 ‘어떤’ 직관적인 느낌인지를 앞에 붙여야 한다고 합니다. ‘좋은 바이브, 나쁜 바이브, 이상한 바이브’가 있는 것이죠.

‘포르쉐 바이브’, 포르쉐가 이 바이브에 대한 수식어가 되는 순간 바이브의 성격은 분명해집니다. 행사장 곳곳에서 눈길을 끄는, 911의 카민 레드와 비슷한 컬러의 레트로 타입 ‘Vibe’ 레터링이 그 ‘바이브’가 어떤 것인지를 전합니다. 과거 버진 애틀랜틱 항공의 ‘V’를 연상케 하는 이 서체는 영미권에서 레트로 타입의 느낌을 살릴 때 힘을 발휘합니다. 레트로를 지향하지만 레터링의 경쾌한 속도감이 현재와 미래를 한 번에 꿰뚫는 느낌이었습니다.

입구 바로 앞에는 원형의 시계 같은 공간이 있습니다. 각 눈금마다 1세대부터 7세대까지가 표시돼 있었고 그 가운데,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911 1세대 모델들이 자리했습니다. 그리고 우측의 하우스 내에는 모터스포츠의 정신을 간직한 모델들, 그리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911의 분위기를 살린 또 다른 세팅과 최신 차량들의 공간으로 이어집니다. 곳곳의 가벽을 이용해 정원과 같은 효과를 냈고 사진을 남길 만한 포인트도 살렸습니다.
세상 단 1대의 911 존더분쉬와 카이엔 쿠페 일렉트릭
포르쉐의 상징인 911과 실질적 캐시카우를 담당하는 카이엔은 이번 행사에서도 주연이었습니다. 포르쉐 코리아는 8세대 후기형(992.2)의 터보 S 모델을 기반으로 한 존더분쉬(Sonderwunsch)와 초고성능 모델인 카이엔 쿠페 일렉트릭(Cayenne Coupe Electric)을 선보였는데요.

911 터보 S 존더분쉬 모델은 우선 강렬한 솔리드 컬러(비 메탈릭)인 루가노(Lugano) 블루 컬러입니다. 루가노는 스위스 남부의 아름다운 호반 도시 루가노에서 따온 이름으로, 청량감과 동시에 묵직하고 균일한 느낌을 전하죠. 여기에 휠과 에어로파츠에 는 화이트 컬러를 적용해 랠리카나 장난감 같은 감성도 더한 모델이었습니다. 기본 제원은 3.6리터 수평대향 6기통 엔진 기반의 T-하이브리드(전기 구동 모터로 구현되는 2개의 터보차저 시스템과 8단 PDK의 통합 시스템)을 갖춘 992.2를 따릅니다. 최고 출력 711ps이며, 4륜 구동으로 차가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0→100km/h 가속 시간은 2.5초에 불과합니다. 최고 속력 332km/h에 달합니다. 존더분쉬 프로그램은 이처럼 고객의 주문에 따라 세상에 단 한 대인 원-오프(one-off) 모델을 만들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도 존더분쉬 부스가 눈에 잘 띄는 무대 잔디밭 인근에 세워져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통장만 자유로우면 됩니다.

존더분쉬 모델의 911이 포르쉐의 로망을 상징한다면 카이엔 쿠페 일렉트릭은 실제 포르쉐를 사정권에 둔 이들이 목표로 삼을 만한 모델이었습니다. 지난 9월 30일 카이엔 일렉트릭이 공식 출시됐으며 쿠페 역시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요. 현장에 공개된 모델을 터보 일렉트릭으로 1,156ps의 최고 출력과 153kgf∙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 모델입니다. SUV임에도 911 터보 S와 동일하게 2.5초만에 100km/h에 도달합니다. 3,023mm의 휠베이스에 113kW 용량의 리튬이온 배터리 팩을 결합한 PPE(Premium Platform Electric)을 기반으로 합니니다. 참고로 쿠페의 경우 1회 완충 시 주행 거리가 SUV보다는 약간 더 길 것으로 보이는데, 참고로 일반형 카이엔 터보 일렉트릭의 경우 468km입니다.
모터스포츠 헤리티지의 정점, 917
1970년대, 포르쉐는 지금처럼 큰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터스포츠 머신 개발에 사력을 다했습니다. 그게 브랜드 가치를 올려주는 것이었으니까요. 917이 대표적으로 그런 모델이었습니다. 1969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공개된 이래 1971년까지 37대가 제작된 내구레이스용 모델로, 1970년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 첫 우승을 달성한 모델입니다.

이 차는 잘 알려져 있든 908을 베이스로 한 모델입니다. 그런데 호몰로게이션(레이스용 차량의 양산 버전을 일정 대수 이상 생산해야 한다는 규정)을 충족하기 위해, 당시 팔릴지 말지도 모르는 차를 25대나 한꺼번에 제작해야 했습니다. 대당 제작 단가는 당시 기준 14만 마르크, 현재 기준으로 대략 환산하면 31만 유로 정도 수준이죠. 그 당시엔 어마어마한 돈이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공도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917은 911 다섯 대 가격이었습니다. 프로젝트 총 투입 비용은 대략 현재 기준으로 800만 유로에 가깝습니다. 레이스에서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 주요 고객군에게 차를 모조리 팔지 않는다면 회사가 존망의 위기에 놓일 수도 있었죠.
1970년 르망 대회에서 917의 우승은 이 모든 위기를 바꿔놨습니다. 1971년의 매출은 무려 9억 마르크에 달햇는데 이는 1969년 기준 4배 가까운 수치였습니다. 그리고 911도 단순 스포츠카를 넘어, 보다 보편층인 프리미엄 지향 고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게 됐죠.
이번 포르쉐 바이브에는 바로 이 917 모델이 주펜하우젠에서 직접 공수돼 왔습니다. 수평대향 12기통 엔진 사운드는 확성 장치 없이도 폭음 같은 사운드를 들려 줬습니다. 공랭식 엔진인데 아무래도 세월이 세월인지라, 배기가스 냄새 속에 희미하게 엔진오일이 섞인 느낌이 있었습니다. 공랭식 올드 레이스카들의 특성이죠. 누군가는 매캐함으로 느꼈겠지만 또 누군가는 모터스포츠 전설의 향취를 맡았을 수도 있습니다.
포르쉐와 어울리는 국내 셀러브리티들 등장
9월 30일 진행된 포르쉐 바이브 서울의 프리뷰 행사에는 포르쉐를 사랑하는 셀러브리티들이 등장했습니다. 포르쉐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이들도 있었죠. 배우 문가영, 수현, 우도환, 이민정, 이준호 등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존재감이 큰 이들이 모였습니다. 특히 이민정은 포르쉐의 딜러사인 SSCL(스투트가르트스포츠카)의 홍보 대사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배우 문가영은 블랙과 레드의 심플한 매치 의상이, 현장에 있던 빨간색 930과 너무나 잘 어울렸습니다. 특히 능통한 독일어로 포르쉐코리아 임원진과 스몰토크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협찬사로 들어와 있는 미쉐린의 캐릭터 인형 비벤덤과 포옹하는 포즈를 취하기도 했는데요. (비벤덤 안에 있던 사람은 찾아내서 국세청에 신고할 겁니다.) 수현은 모델 출신다운 포스가 포르쉐의 강렬함과 잘 어울렸습니다. 단순히 키만 큰 것이 아니라 워낙 골반 위치가 높아 서양 모델인 줄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우도환의 날카로운 눈빛과 깨끗한 피부는 카이엔 일렉트릭 쿠페와 잘 어울렸습니다.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시리즈의 백기현의 잔상이 아직 남아 있더군요. 이준호의 날렵한 이미지는 1세대 포르쉐의 이미지와도 잘 매치됐습니다. 이준호는 드라마 속에서 재벌 2세나 연예인으로 자주 등장해 여러 자동차 브랜드의 PPL 차량과도 좋은 합을 이뤄 왔던 만큼 포르쉐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렸습니다.

흥행 성공의 이면, 아쉬운 관람 태도
페라리나 포르쉐 등 모터스포츠에 근간이 있는 럭셔리 스포츠카 브랜드들의 특징인데, 고객이 아니어도 ‘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포르쉐는 국내에서 대중적 애정도가 높습니다. 마티아스 부세 포르쉐 코리아 CEO는 스피치를 통해서. “한국인들이 포르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라고 했는데, 이는 차를 소유하겠다는 열망을 넘어 포르쉐가 주는 분위기 즉 ‘바이브’에 대한 선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 티켓의 경우 1일권이 2만 5,000원이어서 7세 초과 자녀가 있는 4인 가족이라면 꽤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텐데도 많은 관람객들이 들어왔습니다. 익스클루시브 라운지도 90분씩 운영됐는데 이용하는 사람들도 비교적 시간을 잘 지켜 퇴장했습니다. 저도 90분에 맞춰 얌전히 나왔습니다.
다만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아쉬웠던 모습도 SNS에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흙 묻은 신발 발자국이 차량 실내시트위에 찍혀 있는 모습이었는데요. 발자국의 크기로 봐서 아기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들어올 수 있고 또 실수할 수도 있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구성은 이만하면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진행되는 포르쉐 전용 행사에 비해 맥락의 치밀도가 떨어진다고 보는 이들도 있지만, 한국이 포르쉐에게 중요한 시장이 된 것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닙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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