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를 넘어선 생존, 자동차 업계의 미술 후원
- 한명륜 기자

- 22시간 전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시간 전
제네시스의 <서도호> 전 후원과 BMW, 마세라티의 프리즈∙키아프 동행
수렵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식에서 독립한 뒤로, 미술은 어떤 형태로든 패트런(patron, 후원자) 없이 존재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후원자들은 한 시대 안에도 여러 계층과 갈래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미술의 가장 강력한 패트런은 두말할 나위 없이 거대 자본을 보유한 기업들입니다. 그중 자동차 기업들의 미술 후원에 대해 살펴봅니다.
자동차 미술

장식예술과 엔지니어링의 만남, 자동차
자동차의 탄생은 이동 수단만의 혁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장인들의 영역인 장식 예술과 조직화된 기계 산업이 강하게 맞닥뜨린 결과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초의 자동차가 탄생할 무렵인 19세기 말은 아르누보(Art Nouveau)의 흐름이 유럽을 적시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역사주의라 불리는 사조였는데, 이는 고대 미술을 응용, 재구성하는 경향이었습니다. 이것이 산업혁명의 대량 반복 제조 역량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죠. 아르누보는 이에 반발해 자연물로부터 조형의 영감을 얻은 사조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본능적인 호감을 끌어내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식물, 미인 등이 주 테마였죠. 그래서인지 아르누보 스타일의 작품들은 현재에도 인기가 많습니다.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지금도 크게 사랑받고 있는 알폰스 무하(Alfons Mucha)가 대표적입니다.

카로체리아(carrozzeria)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마차(carrozza)라는 단어에 가게를 의미하는 ‘-eria’가 결합된 말입니다. 피자(pizza) 가게를 ‘피체리아(pizzeria)’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죠. 카로체리아는 자동차의 구동계 제작과 승차 공간이 분리돼 있던 시절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니다. 카로체리아는 아르누보라는 사조와 떼려야 뗄 수 없었는데요. 오랜 세월 구축된 유럽 공방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쌓은 기술적 숙련도는 아르누보와 맞물려 동반 상승 효과를 냈습니다. 당시 고가의 사치품이었던 자동차는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던 푸조(Peugeot)처럼 아름다웠고 당시 공방들은 푸조 가문처럼 기계 공업 기업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대로 남아 장인(artisan)으로서 사람들의 미적 수요에 부응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어느 쪽이든 다 잘 풀리던 시대였습니다. 자동차 승차 공간이 자동차 제조사의 영역으로 넘어간 뒤에도 카로체리아는 코치빌더라는 형태로 존속해 왔고, 카로체리아를 이끌던 장인의 후손들은 자동차 기업의 중추로 20세기 자동차 시대를 이끌기도 했습니다.
면책을 위한 아트 워싱(art-washing)

그럼에도 자동차가 순수 미술을 후원한 것은 자동차 역사에서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물론 러시아 출신으로 추상 미술의 시초를 연 선구자라 불리는 소니아 들로네(Sonia Delaunay)와 1920년대 시트로엥의 인연을 생각할 수 있고, 현재 BMW가 제프 쿤스(Jeff Koons)와 맺고 있는 인연 등을 생각하면 흔한 것 같지만 다릅니다. 자동차 기업들은 미술과 미술 전시회를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후원해오진 않았습니다. 하지 않았다기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이 영역의 강자인 은행이나 백화점을 포함한 유통 업계나 명품 업계에 명함을 내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고가의 자동차 고객들의 관심사에 미술품 수집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기업에서 신경 쓸 차원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미술을 후원하는 기업들은 미술로 가려야 할 치부가 있거나, 혹은 위기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업 미술 투자의 시초로 꼽히는 메디치 가는 표면적으로 금융업을 가업으로 삼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기독교 사회에서 극히 터부시되는 고리대금업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8~15% 정도의 이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상인들이 지불한 이자는 거의 20~40%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돈만 벌려면 그런 오명 따위 상관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메디치 가는 14세기 이후 피렌체 공화정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실권자로서의 지위도 놓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디치 가는 그들이 후원했던 당시 교황 에우헤니오 4세(1383~1447)로부터 ‘성전과 종교 미술을 지어 회개함을 밝히라’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프라 안젤리코, 미켈란젤로 등의 작가들이 남긴 종교 미술 작품이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습니다.

자동차가 아직 산업의 어린이였을 때인 19세기 말 20세기 초, 메디치의 뒤를 이은 유럽 금융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백화점과 명품 제조사들은 제국주의 식민 정책의 덕을 봤습니다. 루이비통은 식민지 수탈로 얻은 이익을 모험심으로 포장했고 백화점 제조사들은 대량 기성품을 유통하며 여성, 아동의 노동을 싼 값에 착쥐했습니다. 20세기 중반에는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해 온 제약회사들이 미술관의 큰 손이 됐습니다. 제약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게 지나치다 보니 후원을 받는 박물관들이 손사래를 치는 경우까지 생겨났죠. 대표적으로 아편 성분 진통제의 위험성을 숨긴 채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미국 사회에 ‘국난’ 수준의 중독자를 낳았던 퍼듀 파마와 그 후원자 새클러 가(Sackler Family)의 사레가 대표적입니다. 구겐하임을 비롯해 테이트 등 그들의 돈을 받은 미술관에 대해 미술가들과 시민사회, 정치권까지 손절할 태세를 보이자 더 이상 이들은 인연을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제약업계의 미술 시장 투자는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파도 앞에서 생존을 기획하다

자동차와 모빌리티 업계의 미술 후원은 금융이나 제약이 그랬던 것과는 약간의 ‘결’ 차이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깨끗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아트 워싱을 하지 않아도, 필수재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죠. 물론 비싼 자동차가 있긴 하지만 이동 자체는 인간의 필수적인 생존 행위입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서며 자동차의 미술계 후원은 제약업계를 크게 추월합니다. 특별히 산업 차원 전체를 흔들 만한 치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본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산업을 넘어 문명 자체가 급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사회 변화 속에서, 모빌리티라는 산업의 본질이 재정의되는 상황인 까닭입니다.
특히 2020년, 팬데믹은 인류 역사 최초로 ‘이동 없는 문명’의 가능성을 경험케 했습니다. 원격 업무와 일상의 급격한 디지털 전환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가상 네트워크의 가치를 입증했습니다. 여기에 테슬라가 제시한 자율주행의 가능성은 이동 수단의 직접 제어를 ‘선택하는 불편’의 영역으로 보내버릴 수 있음을 말했습니다. 더불어 자율주행은 자동차의 구매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동차 모빌리티 기업들은 공간과 기억, 시간과 신체라는 철학적 개념까지 파고들어 스스로를 재정의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이를 가장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미술인 것입니다. 세제 혜택은 오히려 부차적 차원의 문제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2026년의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눈여겨볼 만한 전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제네시스가 주요 후원사로 참여한 국립현대미술관의 《서도호》 展이 대표적입니다. 반투명한 천으로 공간을 구축하는 서도호는 오랜 세월 공간과 이동, 기억과 정체성의 경계를 탐구해 온 작가입니다. 코스모폴리탄으로 살아온 그에게 한국과 뉴욕, 런던의 집은 고정된 건축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이동 장치에 가깝습니다. 이동과 거주가 분리되지 않는다는 이 같은 문제의식은, 기계적 이동 수단을 넘어 ‘사유의 공간’으로 모빌리티를 재정의해야 하는 자동차 제조사의 고민과 자연스럽게 교차합니다.
세계적 아트페어 프리즈의 서울 행사(Frieze Seoul, 9.2~9.5, 서울 코엑스)를 후원하는 BMW 코리아 역시 비슷한 고민을 공유합니다. 2022년 프리즈 서울 첫 행사부터 후원해온 BMW 코리아는 회화, 설치, 사진,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다루며 한국 현대 실험 미술 거장의 반열에 오른 이강소 작가와 협업합니다. 83세 거장의 작품과 함께 BMW 코리아는 프리즈 서울 내 BMW 엑설런스 라운지의 공간을 하나의 작품으로 꾸며 도시의 기억과 이동, 순간의 감각 등을 전합니다. 전시 차량은 초고성능 PHEV SUV인 XM 레이블입니다. 또한 마세라티 코리아는 9월 1일 밤, 프리즈와 키아프(KIAF) 야간 프로그램 중 하나인 <PARALLAX(시차): Where We Meet> 전시에 파트너로 참여합니다. 이날 현장에서는 국내 3대 한정 판매되는 그레칼레 스페셜 에디션 ‘그레칼레 루미나 블루’도 전시됩니다. <서도호>전과 달리 프리즈와 키아프는 미술작품 판매가 중심인 컬랙터 행사인지라, 모빌리티 기업이 담론 생산의 후원자로 참여하는 양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담론이 실체를 갖기 위해서는 결국 작품의 판매와 구매가 일어나야 하죠. 그런 점에서 BMW와 마세라티의 페어 후원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기업이 예술 영역이나 미술 전시를 후원하는 것의 가장 큰 이유는 세제 혜택입니다. 보험이나 여신업의 경우에는 고객들이 사용하지 않고 소멸되지 않는 포인트가 사내 적립금이 될 경우 이에 대한 세 부담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벤트로 끝납니다. 어찌 보면 기업의 입장에서 미술을 그저 세부담을 덜어내는 일회성의 이벤트로 대할 수 있을 때가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모빌리티 브랜드의 전시 후원은 유희의 차원을 한참 넘어선 생존을 위한 자기 재정의에 다름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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