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페라리와 새로운 계급 미학
- 한명륜 기자

- 1일 전
- 4분 분량
현대 중동 미술 시장 트렌드가 힌트
최초의 전기차 루체의 등장부터 페라리 디자인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선이 많았습니다. 전직 페라리 CEO까지 논쟁에 참전했죠. 혹자들은 ‘중국풍’이라며 비난합니다. 저도 노골적인 중국적 미감을 싫어하지만 이번만큼은 편리한 오해라 봅니다. ‘중’은 ‘중’인데 중국이 아닌 중동에 이런 디자인의 ‘원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페라리는 철저히 실소비자들의 미적 감각을 따라가는 브랜드이며 현재 가장 강력한 고객은 중동 부자들입니다 그들의 미감이 어디 있는지를 통해 현재 페라리의 디자인이 이러한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SF90 스트라달레 기반인데 왜 이래"
방향성 잃었다는 질타

지난 주 페라리가 공개한 원 오프 모델(주문 기반 단일 생산 차량)인 CZ26도 어김없이 디자인 논란에 말렸습니다. 국내 저널리스트와 해외 포럼에서는 이 차의 가장 상징적인 부분인 전면 디자인이 현대차의 수소연료전지 기반 컨셉트카인 ‘N 비전 74(N Vision 74)’를 떠올리게 한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N 비전 74는 '콩코르소 델레간차 빌라 데스테 2023' (Concorso d'Eleganza Villa d'Este 2023)’에서 첫 선을 보였죠. 이제 페라리가현대차의 혁신성을 뒤쫓아가는 거냐는 한탄도 나옵니다.
당연히 이런 디자인은 브랜드 최초의 전기차인 루체(Luce)와 결을 같이합니다. 반응이 격한 것은 SF90스트라달레라는 V8 트윈터보 엔진 기반의 최고 출력 1,000p에 달하는 초고출력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머신으로, 2010년대 페라리 특유의 날카로운 매력을 잘 보여줬던 차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를 현재 가장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차의 외형과 가깝게 만든 것은 일종의 모욕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페라리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플라비오 만조니(Flavio Manzoni)는 슈퍼스포츠 베를리네타 콘셉트에 대한 미국인 고객의 독창적인 시각을 담아낸 것이라고 논란을 원천봉쇄하려 합니다. 1970년대 이탈리아 산업디자인에 근거한 미감—사실 이렇게 따지면 현대차의 N 비전 74도 그 당시 이탈리아 디자인에 대한 오마주이니까 닮았다는 게 더 설득력 있다는 나쁜 말은 참을게요—이라고 설명합니다. 극도로 깔끔하고 절제된 표면 위에 기능이 직접 도드라지도록 한다는 방법론이죠.
페라리 포함, 세계 럭셔리 업계를 조용히 삼킨
중동의 미니멀 오퓰런스

우선 이런 미학이 ‘중국적’이 아닌 ‘중동적’이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일단 요즘 중국 럭셔리는 시끄럽고 과시적입니다. 조형적인 면에서 그렇습니다. 과다한 로고 플레이와 엠블럼의 난사는 때로 환공포증과 같은 역겨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루체를 포함해 페라리를 지배하는 면의 미감은 최근 수 년간 중동의 부호들이 보여 온 ‘미니멀 오퓰런스(minimal opulence, 고요한 부유함)’의 지향성 속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중동권 부자들은 로고나 시그니처 등을 좋아하기보다 마치 미술관의 중정에 있는 듯한 단순한 면의 기념물 같은 작품들을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심플한 면과 덩어리의 구현을 선호한다는 것이죠. 또한 복잡한 구조나 층위는 지양합니다. 이런 스타일을 미니멀 오퓰런스(minimal opulence, 고요한 부)라고 칭합니다.
이런 용어는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유럽의 경기 침체와 더불어, 유럽의 하이엔드 문화 권력은 중동으로 이동했습니다. 특히 아랍의 봄 이후 세속주의 지향 아랍 국가들의 위상이 좀 더 올라가면서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중동 부자들의 엄청난 재력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수년간의 행보는 더욱 파격적이었죠. 미술계에서도 이들의 미의식은 오히려 유럽 기업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보그 아라비아(Vogue Arabia)는 럭셔리 마켓을 뒤흔든 이 트렌드가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고착된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음을 분석했습니다.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최고급 원단과 정교한 비례감만으로 압도감을 주는 미니멀한 스타일이 중동 최상위 자산가들의 새로운 신분 상징(Status Symbol)이 되었다는 지적입니다.

중동 최대의 럭셔리 유통·컨설팅 그룹인 샬후브(Chalhoub Group)와 메리디오 리포트 역시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합니다. 중동(GCC) 지역의 초고가 하이엔드 마켓은 매년 6% 이상 독보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로로피아나, 브루넬로 쿠치넬리 등 미니멀한 실루엣을 극대화한 브랜드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중국계 패션 컨설턴트로 유명한 래이팅 리(Reiting Lee)는 이를 '칼리지 미니멀리즘(Khaleeji Minimalism)'이라 명명했습니다. 칼리지)خليجي( 란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 사람들의 문화를 가리킵니다. 즉 중동의 젊은 왕가와 부호들이 과거의 화려한 과시에서 벗어나 조용하고 절제된 색조로 완전히 이동했다는 분석이 전제된 명명인 것이죠. 중국 출신 분석가가 보기에도 중국과는 거리가 있다고 본 겁니다.
걸프 비즈니스 위클리(Gulf Business Weekly)의 2026년 럭셔리 트렌드 리포트 역시 걸프 지역 구매자들은 더 이상 거대한 모노그램 카테고리에 열광하지 않습니다. 대신 소재 본연의 가치와 건축학적 구조미를 내세우는 보테가 베네타나 하이엔드 수공예 브랜드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중동 부호들의 미감이 '절제된 럭셔리(Understated luxury)'에 완벽히 동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지표입니다.
페트로달러 기반 미국 자본의
미적 인용(aesthetic citation) 관습

‘CZ26의 고객은 미국인인데 무슨 중동 미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미의식에서 전통적 자산이 약합니다. 하이엔드 자본의 힘으로 미학적 인용(aesthetic citation)을 해 온 것이 보다 일반적이었죠. 게다가 중동 자산가들의 자산 역시 페트로달러입니다. 결국 페라리가 선택한 '깔끔한 면에의 집착'은 미국인 컬렉터의 개인적 취향이라기보다, 페트로달러가 지배하는 글로벌 하이엔드 시장 전체가 공유하는 '미적 인용'의 결과물입니다. 선이 아닌 덩어리로 승부하는 페라리의 행보는, 지금 가장 막강한 자본이 가리키는 미학적 나침반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증거입니다.
2026년 3월 1일에 발발한 중동 전쟁이 지지부진하지만 이 역시 이런 트렌드에는 큰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기화된 전쟁과 경제적 양극화 속에서 일반 국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는 동안, 일부 초고액 자산가들의 자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특히 방위산업, 에너지, 그리고 중동 등 글로벌 자본 흐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미국 최상위 부유층들은 이 거대한 시대적 파동 속에서 막대한 수혜를 입었습니다. 이들에게 페트로달러의 온기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 계좌로 직결되는 현실입니다.

결국 대다수 대중이 겪는 고통의 이면에서, 중동의 자금줄과 결합해 천문학적인 부를 거머쥔 소수의 미국 자본가들은 과거의 과시적 소비를 넘어선 '미니멀 오퓰런스'의 문법을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CZ26과 같은 모양의 차를 주문하는 미국인 컬렉터의 지갑은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바로 이 전쟁과 페트로달러가 낳은 승자들의 자화상인 셈입니다.
물론 제가 보기에도, 루체와 SF90 스트라달레 기반이라는 원오프 CZ26 역시 매력적이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미감이라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계층을 정확히 반영하며 잘 섞이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인데 어떤 계층에서는 그 이상으로 아름다울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부산국제영화제 나이트패션 초청작이기도 했던 영화 <더 메뉴(The Menu)>(마크 미로드, 2022)의 기괴한 요리들을 생각하면 그렇죠. 물론 영화 속에서야 그것이 역겨운 허위지만, 사실 악의가 없어도 극부유층의 미의식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온전히 공감하기는 쉽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이런 점에서 페라리는, 오늘날 자신들의 브랜드가 서 있는 위치를 다시 한 번 정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됩니다. 그간 슈퍼카 시장의 반병이라 할 수 있었던 한국조차도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페라리 주문과 인도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페라리는 많이 파는 것을 행복하게 여길 브랜드가 아닙니다. 뭔가 상식을 넘어선 가치를 손에 쥐기 위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 규모의 돈을 쉽게 지불할 수 있는 부자들을 위한 브랜드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자동차 컨텐츠를 만드는 이들 중에 본 기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자들도 있겠지만, 페라리가 노리는 주 고객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을 겁니다. 분석의 끝이 가끔 이렇게 허망한 결말에 이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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