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처럼 맞물린 ‘그날’ 유해란과 김주형

포르쉐와 제네시스가 후원한 대회, 한국 골프의 힘이 동시에 폭발하다
지난 주말, 전 세계 골프 팬들의 밤잠을 설레게 만든 믿기 힘든 드라마가 연달아 펼쳐졌습니다.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알프스 산자락과 스코틀랜드 노스베릭의 거친 링크스 코스. 약 1시간 남짓한 미세한 시차가 존재하는 두 나라에서, LPGA의 유해란, PGA 김주형 두 한국 선수가 동시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겹경사가 일어났습니다.

사실 이 두 대회의 우승이 같은 날 겹친 것은 냉정히 보면 ‘우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스포츠’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늘 이러한 기적 같은 ‘때(Timing)’의 마법에서 비롯됩니다. 각자가 보이지 않는 흙 속에서 묵묵히 묻어두었던 땀방울과 인내라는 씨앗이, 공교롭게도 바로 그 주말이라는 약속된 계절을 만나 함께 만개했습니다. 자동차 제조사가 후원하거나 주최하는 권위 있는 대회라는 것도 공통점이었죠. 대한민국 골프의 위상을 다시 한번 드높인 ‘슈퍼 코리안 데이’의 생생한 기록을 되짚어봅니다.
유해란 김주형
대혼돈을 이겨낸 에비앙의 여왕,
유해란의 10타 차 역전 우승
프랑스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시즌 네 번째 메이저 대회인 아문디 에비앙 챔피언십(총상금 910만 달러)은 유해란(25세)에게 역사적인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유해란은 이미 3주 전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딴 상태였습니다.

우승의 발판은 토요일 3라운드에서 마련되었습니다. 유해란은 버디 9개와 이글 1개를 통해 무려 11언더파 60타를 몰아쳤습니다. 이는 남녀를 통틀어 여자 메이저 대회 역사상 싱글 라운드 최저타 신기록이었습니다. 3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 라운드를 맞이한 유해란의 메이저 2연패는 무난해 보였습니다. 최종일 초반 경쟁자였던 일본의 신성 이와이 아키(24세)가 더블 보기를 범하며 무너져 한때 두 선수의 차이가 5타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에비앙의 일요일은 언제나 혼돈을 선사합니다. 선두 유해란에게 무려 10타 차(최종일 출발 기준 7타 차) 뒤져 있던 2022년 챔피언 브룩 헨더슨(캐나다)이 무서운 기세로 추격을 시작했는데요. 헨더슨은 1번 홀 버디를 시작으로 7번 홀 이글, 8번 홀 홀인원까지 만들어내며 순식간에 차이를 단 1타 차로 좁혔습니다. 반면 이와이 아키 역시 초반 흔들림을 극복하고 6번과 9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하며 전반 종료 시점에 유해란을 2타 차로 바짝압박했습니다.

승부는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요동쳤습니다. 헨더슨은 두 번째 샷을 홀 2.4m 지점에 완벽히 붙여 이글 기회를 잡은 반면, 티샷이 왼쪽으로 밀렸던 유해란과 이와이 아키는 레이업을 한 뒤 세 번째 샷으로 그린에 겨우 공을 올려야 했습니다. 둘 중 한 명이라도 버디를 잡지 못하면 헨더슨에게 그대로 역전당하거나 우승컵을 내줄 위기였습니다.
이때 유해란의 극적인 버디 퍼트가 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뒤이어 이와이 아키의 아쉬운 퍼트가 왼쪽으로 빗나가며 연장전은 유해란과 헨더슨의 맞대결로 좁혀졌습니다. 18번 홀에서 이어진 연장 첫 홀, 반드시 공을 가깝게 붙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헨더슨의 어프로치 샷은 러프에 빠졌고 칩샷마저 빗나갔습니다. 반면 유해란은 침착하게 1.2m 버디 퍼트에 성공하며 마침내 메이저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한 시즌에 두 명의 선수가 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을 기록한 것은 LPGA 역사상 최초의 기록입니다.

우승 가뭄을 극복한 김주형,
링크스 코스에서 부활을 외치다

유해란이 에비앙에서 샴페인 세례를 받는 동안, 스코틀랜드 노스베릭의 더 르네상스 클럽에서는 또 다른 감동의 스토리가 쓰이고 있었습니다. PGA 투어와 DP 월드투어가 공동 주관한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총상금 900만 달러)에서 김주형(24세, 영어명 Tom Kim)이 최종 합계 17언더파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김주형은 10대 시절 데뷔하자마자 PGA 투어 통산 3승을 거두며 글로벌 스타로 급부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극심한 퍼팅 난조와 원인 모를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챔피언 조에서 그의 모습을 보기는 점점 어려워졌고, "반짝 스타가 아니냐"는 의문 섞인 시선도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김주형은 묵묵히 버텼습니다. 타이거 우즈가 이끄는 스크린골프리그(TGL) 팀(주피터 링크스 GC)의 일원으로 합류해 우즈에게 수많은 조언을 구했고, 정교했던 예전의 샷 감각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칼을 갈았습니다. 그 인내의 씨앗이 마침내 자신이 첫 톱10을 기록했던 약속의 땅 스코틀랜드에서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최종 라운드에서 김주형은 보기 없이 버디만 6개를 쓸어 담는 무결점 플레이(64타)를 선보였습니다. 이번 대회 우승 경쟁 라인업은 그 어느 때보다 쟁쟁했습니다. 3라운드까지 김주형과 우승을 다퉜던 크리스 고터럽(미국)과 로컬 히어로 로버트 매킨타이어(스코틀랜드)는 최종 라운드 초반부터 샷이 급격히 흔들리며 우승권에서 멀어졌습니다. 한편, 3라운드 73타로 다소 처져 있던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는 마지막 날 김주형과 같은 64타를 몰아치는 불꽃 타를 과시했으나, 이미 벌어진 격차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경쟁자들의 자멸과 추격을 뒤로한 채, 김주형은 정교한 샷 컨트롤로 승기를 굳혔습니다. 특히 난코스 중의 난코스인 16번 홀(파4)에서 205야드를 남겨두고 4번 아이언으로 날린 세컨드 샷의 볼은 홀 1.5m 옆에 안착했고 이는 자연스러우면서도 결정적인 버디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김주형은 맹추격을 벌인 호주의 이민우(27세)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정상을 탈환했습니다.
이 우승으로 김주형은 25세 이전에 PGA 투어 4승을 달성한 역대 4번째 비 미국인 선수로 이름을 올렸습니다.사실 ‘톰 킴’이라는 이름과 유창한 영어 외에도 나이에 비해 짧지 않은 확약 기간 때문에 교포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데요. 김주형은 미국 영주권도 없는 한국인입니다. 호주 영주권을 잠시 가졌던 적은 있지만 그마저도 호주의 법이 개정되며 상실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우승은 김주형에게 상징적인 의미가 깊습니다. 제네시스는그의 멘토이자 정신적 지주인 타이거 우즈가 직접 호스트로 활약하는 대표 시그니처 대회인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의 타이틀 스폰서이자, 그가 속한 PGA 투어의 든든한 파트너이기 때문입니다. 우즈와 제네시스 브랜드의 이 끈끈한 유대감을 김주형이 의식하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우승 인터뷰에서 "제네시스가 후원하는 대회에서 마침내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 너무나도 특별하다"고 밝힌 김주형에게 가장 먼저 축하 문자를 보낸 사람은 역시 타이거 우즈였습니다.
모터스포츠 테마부터 미래형 로봇 카까지
관람객을 사로잡은 자동차 브랜드의 매력
이번 ‘슈퍼 코리안 데이’의 또 다른 볼거리는 두 대회에서 펼쳐진 글로벌 명품 자동차 제조사의 화려한 관람객 콘텐츠였습니다. 독일의 스포츠카 명가 포르쉐(Porsche)와 한국의 럭셔리 카 제네시스(Genesis)는 필드 곳곳에 모터스포츠 영혼과 미래형 테크놀로지를 심어 갤러리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습니다.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의 시그니처 코스인 16번 홀(파3)에는 포르쉐의 야심작인 순수 전기 스포츠카 ‘포르쉐 카이엔 일렉트릭(Cayenne Turbo Electric)’이 홀인원 부상으로 당당히 자리잡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포르쉐는 모터스포츠팀 창단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대중에게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포뮬러 E 레이스카 ‘포르쉐 99X 일렉트릭(Porsche 99X Electric)’을 퍼블릭 빌리지에 깜짝 전시했습니다. 일반 관람객들이 포뮬러 E 서킷 밖에서 최첨단 전기 레이스카를 실물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또한,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는 레만 호수의 그림 같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시승 체험 프로그램과 전용 스카이라운지를 운영해 오감을 만족시켰습니다.


제네시스 역시 스코티시 오픈에서 갤러리들에게 독자적인 프리미엄 경험을 선사했습니다. 필드 주변에 14대의 최신 제네시스 라인업을 전시해 '한국적 환대(손님, Son-nim) 문화'를 세련되게 전달하는 한편, 몰입형 팬 존에 ‘제네시스 퍼블릭 라운지’와 ‘드라이빙 레인지 갤러리’를 개설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최초로 공개된 미래형 이동 장치인 ‘제네시스 박스 버기 콘셉트(Genesis Box Buggy Concept)’였습니다.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처음 등장했던 영감을 고스란히 담아, 현대모비스와의 협업을 통해 제작된 이 프리미엄 로봇 모빌리티 쇼케이스는 4륜 독립 모터와 4륜 스티어링, 바이와이어(By-Wire) 기술을 탑재해 뛰어난 조향 성능과 로봇 기술의 조화를 선보였습니다. 클래식한 골프장 그린 위에 등장한 이 공상과학 같은 초현대식 이동 수단은 9만여 명의 관람객들에게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모빌리티의 미래를 제대로 각인시켰습니다.

한편, 두 대회 모두 선수와 캐디들이 군침을 흘렸던 홀인원 경품 차량은 아쉽게도 단 한 명의 주인공도 찾지 못했습니다. 에비앙 16번 홀의 카이엔 일렉트릭도, 스코티시 오픈 15·17번 홀의 이벤트 차량도 끝내 주인을 찾지 못했죠. 에비앙의 경우 마지막으로 홀인원 부상 차량을 타간 선수는 2024년 대회 1라운드에서의 영국의 조디 이워트 샤도프(Jodi Ewart Shadoff)입니다. 생애 첫 홀인원이 포르쉐 마칸 터보 일렉트릭(Porsche Macan Turbo Electric)을 받는 행운으로 이어졌던 거죠.

비록 기적의 샷은 터지지 않았으나, 김주형은 우승자 부상으로 전달된 고성능 전기차 ‘제네시스 GV60 마그마(GV60 Magma)’의 열쇠를 직접 손에 넣게 됐습니다. GV60 마그마는 최고 출력 650ps를 발휘하는 E-GMP 기반 고성능차로, 같은 집안의 현대차 아이오닉 5 N과 동일한 스펙이나, 승차감, 운전 경험의 고급스러움 면에서 유럽 럭셔리 브랜드들의 관점을 반영하는 차이기도 합니다. 1억에 가까운 럭셔리 전기 스포츠카라고 할 수 있죠.
우연이 만든 기적,
그래서 더 아름다운 '때'의 미학
유해란, 김주형 두 선수의 경기는 서로 다른 바람을 맞으며, 서로 다른 잔디 위에서 치러졌습니다. 이를 두고 억지로 하나의 공통점을 찾아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한 스토리텔링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스포츠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밤낮없이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던 이들의 노력이 기적처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교차하며 거대한 시너지를 내기 때문입니다.
유해란이 에비앙의 혼돈 속에서 "제발 들어가라"고 기도하며 퍼터를 떠난 공이 홀컵에 떨어지던 순간과, 김주형이 스코틀랜드의 거친 바람 속에서 4번 아이언 샷을 날려 홀컵 옆에 멈추 세우던 순간은 대한민국 골프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때’로 남을 것입니다. 가장 깊은 어둠을 견디고 일어선 김주형의 끈기와, 정상의 자리에서도 안주하지 않고 역사를 새로 쓴 유해란의 단단함. 두 선수가 흘린 땀방울은 우연이라는 바람을 타고 날아와 우리에게 최고의 주말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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