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Feature] 은밀하게, 위대하게 페라리가 도전 중인 기록
- 한명륜 기자
- 6월 21일
- 3분 분량
르망은 499P로 3년 연속 우승 달성, 시즌 최종 우승도 가시권
지난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라 사르트 서킷에서 열린 2025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대회가 페라리의 하이퍼카 부문 3년 연속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르망 24시 대회는 월드 내구레이스 챔피언십(World Endurance Championship)의 가장 큰 이벤트입니다. 페라리 499P의 르망 24h 내구레이스 우승은 3년 연속 기록입니다. 내구레이스는 지금 페라리의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만큼 르망이라는 대회의 상징성이 강하죠.

하지만 페라리는 이 화려한 시기 동안 WEC 시즌 우승 기록이 없었습니다. 시즌 마지막을 장식한 건 토요타였죠. 어쩌면 페라리는 그간 르망 타이틀에만 만족했을지도 모릅니다. 모터스포츠와 페라리의 상품성을 연결할 때도 그게 어울렸으니까요. ‘르망 우승’ 이 한 마디가 전통적인 페라리 고객을 대상으로는 더 적합한 펀치라인이겠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페라리의 총수인 존 엘칸 회장은 상징과 실리를 모두 중시합니다. 그가 살뜰히 챙기는 페라리 내구레이스 팀은 이제 다른 단계의 목표를 노리고 있습니다.
페라리 499p 내구레이스
제조사 부문 선두,
르망 이후 2위 토요타와 77포인트 차
페라리는 6월 15일 르망 24시 대회 이후 제조사 랭킹 1위를 압도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총 172포인트로, 토요타 대비 77포인트를 앞서고 있습니다. 르망은 다른 라운드에 비해 포인트가 2배가 되는 더블 포인트 라운드이기 때문이죠. 3위가 30포인트이므로 다른 대회의 1위 포인트보다 높습니다.

2위인 토요타는 95포인트, 3위이자 지난 해 드라이버 챔피언 배출 제조사인 포르쉐는 84 포인트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후반기에 4개 대회가 남았고, 레이스는 끝까지 완주해야 그 결과를 알겠지만, 경우의 수를 계산해 봐도 페라리가 우승할 확률이 높습니다. 토요타가 남은 경기를 모두 우승한다고 가정했을 때, 페라리 차량들이 전부 리타이어한다면 안전할 겁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페라리 차량들이 포디움에 오르게 되면 다시 페라리의 우승 가능성이 크게 높아집니다. 고배당을 노리는 도박사라면 페라리에 걸지 않을 겁니다.
하이퍼카 통합 이후 최초의 동시 타이틀
FIA(국제 자동차경주연맹) WEC 규정과의 클래스 변화는 복잡한 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각 권역에서 진행되고 있던 내구레이스를 하나의 대회 타이틀 안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각 대회의 정체성과 거기서 존재감을 쌓은 제조사의 입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헸기 때문입니다. 제조사들마다 워낙 내세울 것들이 너무 뚜렷한 점도 작용하죠. 가장 많은 우승을 한 포르쉐, 상징적인 존재인 포드, 토요타, 자동차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와 굵직한 기록 등을 남긴 푸조 등 각자의 이익을 조율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죠. 사실 지금도 르망뿐만 아니라 FIA의 구성원들은 이들 제조사들의 이해와 협잡에 휘둘립니다.

특히 최상위 클래스를 정의하고 운영하는 방식은 까다롭죠. 특히 기술 자유도와 운영 비용 사이의 균형에 대한 암묵적인 다툼은 포뮬러원만큼이나 심했습니다.
현재의 최상위 클래스는 2021년 등장한 하이퍼카 클래스입니다. 기존 LMP1의 비용을 낮추기 위해 등장한 LMH(Le Mans Hybrid)와 2023년부터 LMH와 혼주하는 LMDh(LeMans Daytona Hybrid) 두 가지입니다. 특히 LMDh는 비용을 좀 더 글로벌 한 기준에서 합리적으로 조정해 BMW를 포함 다른 제조사들이 개입할 여지를 열었죠. 비용이 낮아지긴 했어도 자체 개발 LMH 플랫폼을 운영하는 페라리의 경우는 대략 5,000만 유로(한화 약 790억 원) 이상의 비용을 필요로 합니다.

LMDh로 WEC와 미국 IMSA 내구레이스에 모두 출전하는 포르쉐의 경우는 3,000만 달러의 운영비를 쓰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토요타, 페라리, 푸조 등과 비교해 가장 적은 비용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네시스가 2026년부터 진입하려는 영역도 LMDh입니다. 현대차의 위상이 가파르게 오르긴 했지만 대략 이 포르쉐 정도의 비용이 아닐까 합니다.

르망이 WEC에 통합된 이후, 의외로 토요타 가주 레이싱이 내구레이스계를 지배했습니다. 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전폭적 지지를 얻은 만큼 퍼포먼스와 드라이버 진용이 대단했죠. 물론 이전에는 토요타가 물론 클래스 출범이 얼마 안 된 시점이기도 하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그 정도 독주를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도 했죠.
그런데 페라리가 벌써 이걸 깰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겁니다. 아직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지만 확률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존 엘칸 회장의 행보는 토요타 가주 레이싱을 직접 챙기는 토요타 아키오 회장의 행보를 생각나게 합니다. 팀이 잘 안 될 수가 없습니다.

페라리는 수 년째, 모터스포츠의 또 다른 최상위 클래스인 포뮬러원에서 팀의 존재감이나 드라이버의 스타성에 비해 명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지 못합니다. 이런 시기에 르망 3연속 우승과 WEC 통합 우승은 큰 성과가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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