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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들의 놀이터에 판 깔아준 한국타이어 카밋, '까쥬' @ 테크노링

작성자 사진: 한명륜 기자
한명륜 기자
14시간 전
5분 분량

최종 수정일: 1시간 전

9울 12일, 태안 한국 테크노링에서 진행된 ‘까쥬’ 현장 스케치와 인사이트

보도자료를 받고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까쥬’가 뭐야, 그런 생각이 들었죠. '까쥬'는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가 태안에 위치한 테스트 트랙인 한국 테크노링(Hankook Technoring)’에서 주최한 카밋(car meet)입니다. 카밋은 미국 서부에서 기원한 자동차 서브 컬처입니다. 한국타이어의 모기업인 한국앤컴퍼니는 재계 30위권 이내의 대기업입니다. 이런 대기업이 왜 이런 행사를 후원할까요?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봤습니다.

 

카밋 까쥬


Cars & Juice, Hankooktire at Technoring
9월 12일, 태안의 한국테크노링에서진행된 한국타이어앤컴퍼니의 카밋 '까쥬(Gas & Juice)' 현장

카밋(car meet)이 뭔데?

사실 ‘카밋(car meet)’이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용어입니다. 여러 대의 자동차와 이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터쇼를 연상케 하지만 모터쇼는 아닙니다. 모터쇼는 엄연히 기업이 전시의 주체가 되지만 카밋은 개인 단위의 자동차 애호가 혹은 샵, 커뮤니티 운영자들이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Gas & Juice at Technoring
'까쥬' 행사 참가를 위해 들어서는 참가자의 차량.

카밋은 미국에서 유래한 자동차 문화입니다. 카밋이라는 용어가 이런 모임을 지칭하게 된 것은 2000년대의 일이지만 그 원형은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정비병 출신의 참전 군인들은 버려진 활주로나 인적 드문 곳에서 레이싱을 즐겼습니다. 이 과정에서 꾸며진 자동차를 과시하거나 정비 영업을 하기도 했죠. 카밋은 특별한 계획 없이 언제 어디에서건 열릴 수 있는 것이었고 규모도 다양했습니다.

 

Gas & Juice at Hankook Technoring
현장에서의다양한 프로그램

그러나 좁은 의미 즉 서브 컬처적 의미를 갖고 있는 현재의 카밋 개념은 미국에서도 1990년대 이후에 정립됐습니다. 서브 컬처(sub culture)란 주류 문화에 대해 전복적인 태도를 갖고 사회적인 소수자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행위로 정의됩니다. 1950년대, 미국 사회학자인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서부 지역의 카밋이 이런 서브 컬처 컨텐츠로서의 성향이 강했습니다. 애초에 이 지역은 인종 구성 면에서도 백인보다는 히스패닉계나 흑인들이 많았고 2차 세계대전 전후에는 아시아인들의 비중도 높아졌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중산층 이하에 속했던 이들의 자동차 문화는 당연히 제조사가 격식을 갖춰 진행하는 자동차 공개 행사나 모터쇼, 고객 행사와 거리가 먼 것이었죠. 인종 차별도 심할 때였다 보니 공권력의 제재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카밋이 합법적인 행사로 자리잡은 것은 거의 1990년대 중후반에 이르러서의 일입니다. 특히 일본 만화 <이니셜D>의 세계적 성공 그리고 2001년부터 시작된 <분노의 질주(Fast & Furious)> 시리즈 등은 위상과 결을 바꿨습니다.

 

대기업이 ‘카밋’을 여는 이유?

그래서 대기업이 카밋 행사를 연다는 것이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기업은 한 국가의 경제나 문화권에 있어서 주류 제도권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전복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서브 컬처 콘텐츠를 후원한다?

 

사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돈이 되면 모든 것을 상품화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0세기의 락/메탈 그리고 힙합이죠. 대중이 열광하는 것이라면 제도권에 있는 자신들을 향해 치켜드는 ‘가운뎃손가락’도 아주 예쁜 상품이었습니다. 거세게 저항하고 격한 욕설을 섞어 노래하며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몸짓으로 주류와 멀어지려는 에너지가 강할수록 자본주의 세계를 설계하는 대기업들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 구조를 못 견디면 ‘나는 프레디 퀸의 머큐리처럼 즐길 자신이 없다’라며 세상을 등진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커트 코베인의 선택도, 자신의 죽음이 상품이 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Artist Bottle Club
무알콜 맥주 아티스트 보틀 클럽과의 협업 부스

여기서 보이는 카밋의 서브컬처적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강한 ‘몰입’이죠. 서브컬처를 가능케 하는 본질적인 동력 중의 하나는 ‘나는/우리는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라는 심리입니다. 강한 배기음을 내고 스피드를 즐기는 것은 사실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만 그 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척되는 행위입니다. 마치 지난 세기에 락/메탈이나 힙합이 그랬던 것과 비슷하죠. 특별히 법의 범위를 벗어나지는 않더라도 외관 드레스업을 화려하게 꾸미는 행위등도 별로 좋은 시선을 받지는 못합니다. 물론 그런 차를 타고 하는 행동 특히 공도에서의 운전 습관 등이 그런 시선을 자초한다고 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사후적인 경험칙입니다. 즉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지 않아도 일종의 타자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죠. 서브컬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몰입에는 이러한 배제에 대한 분노도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몰입이란 거, 기업에게도 무척 매력적입니다. 몰입은 이성이 아닌 정서의 영역입니다. 기업 입장에서 살 이유를 만드는 것은 하수고, 살 기분을 끌어내는 것이 상수죠. 내가 즐기는 것을 누군가가 정서적으로 지지해주는데 그게 물건을 파는 기업이라는 것이 굳이 거부할 일일까요?

 

HYUNDAI IONIQ 6
드리프트를 선보이는 현대차 아이오닉 6

게다가 한국의 경우, 서브컬처를 즐기는 이들에게서조차 공인된 권위를 갈구하는 심리가 드러납니다. 급나누기와 경쟁이 사회 구성원들의 내면에 내재화된 결과로도 볼 수 있는데요. 기업이 나서서 이런 문화를 적극적으로 인정해주는 모습은 뭔가 알 수 없는 자부심, 인정 욕구의 충족을 경험케 합니다.

 

한국타이어의 카밋은 ‘모터 컬처 브랜드’를 지향하는 산하 브랜드인 ‘드라이브(DRIVE)’가 주도해 왔습니다. 앞서 이미 두 번의 드라이브 카밋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이번엔 아예 한국타이어의 테스트 트랙인 테크노링에서 이를 진행한 겁니다. 테크노링은 사실 이를 함께 사용하는 현대차그룹의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프로그램이 아니면 일반인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 ‘까쥬’ 행사는 500여 대의 차량과 3,000명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행사를 진행한 겁니다. 여기서 한국앤컴퍼니의 다양한 모빌리티 솔루션 브랜드들이 고객과 접점을 가졌습니다. 고성능 수입차 정비 전문 브랜드이자 튜닝 및 애프터마켓 솔루션을 제공하는 소닉(Sonic)을 비롯해 윤활유 브랜드인 모빌원, 요아정 같은 식음 브랜드까지 들어왔습니다. 또한 한국타이어가 진행한 독특한 협업 브랜드인 무알콜 음료 브랜드 아티스트 보틀 클럽도 부스를 차렸습니다.

 

이러한 한국타이어의 카밋 '까쥬'는 ‘까스(Gasoline)’와 ‘쥬스(Juice)’ ‘Gas & Juice’의 줄임말입니다. 없어 보이니까 애들처럼 말 줄이지 말라는 드라마 대사도 있는데 오히려 제도권에 있는 대기업이 이를 장려하는 모양새입니다. 역설적이죠. 그만큼 격의 없이 강하게 다가가 몰입을 유도하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참고로 쥬스는 배터리가 닳았을 때 ‘run out of juice’라는 표현이 있는데요. 즉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가리지 않는 카밋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구성 자체는 즐겁고 우수한 시설 인프라를 통해 쾌적한 환경이 제공됐지만, 한국에서는 이 분야를 즐기는 사람이 한정돼 있는 만큼, 아마 이 분야에 관심이 있었던 이들이라면 ‘아는 얼굴들이구먼’이라는 짤이 생각났을 겁니다. 차를 좋아하면 알 만한 유튜버와 모터스포츠 드라이버들은 터줏대감이었죠. 차종도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 보이는 것만큼 아주 다양하지는 않았습니다. 제네시스 쿠페의 드리프트는 영원의 춤을 추는 것 같았고, BMW M은 어디서 그렇게 계속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Hankooktire Offroad Brand Dynapro
오프로드 전용 라인업 다이나프로 존

 

하지만 오프로드용 타이어 브랜드인 다이나프로를 적극 활용한 SUV 체험 등은 일반적인 고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습니다. 이것 역시 테크노링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과감히 개방해 진행한 행사였기에 가능했죠.

 

서브컬처 후원하는 기업 의외로 적지 않아

사실 이런 서브컬처 컨텐츠를 후원하는 대형 모빌리티 기업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과거보다 자동차 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 대두되는 시기다 보니 보다 정서적으로 밀착하지 않으면 미래 세대에 생존할 방법이 없다는 위기감이죠.


Porsche Luftkühlt at Tokyo
포르쉐가 후원하는 카밋 루프트퀼트(Luftgekühlt)

 

토요타는 이 영역에서 매우 선도적인 브랜드입니다. 레이싱에서 쌓은 존재감도 있지만 그 성과를 대중적인 영역으로 가져오고자 노력합니다. 실제로 튜닝 및 애프터마켓 분야의 세계적 전시인 도쿄오토살롱에도 토요타 아키오 회장이 직접 나서서 격의 없이 소통합니다. 직접 카밋을 후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콘텐츠인 토요타 타임즈 등을 통해 이를 긍정적으로 다루기도 합니다. 그 외에 토요타 오너들 간의 자체적인 카밋도 활성화돼 있습니다. 특히 토요타는 한국에서도 다른 제조사들이 크게 주목하지 않는 마이너한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현대차의 경우는 아직 토요타만큼 유연하지는 않지만 2024년 토요타 아키오 회장과 정의선 회장의 만남 이후로 보다 달라진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차는 고부가가치 브랜드로 성장해가려는 중이기 때문에 이런 서브컬처를 후원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른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간접적으로 후원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합니다.

 

포르쉐는 카밋을 적극적으로 후원합니다. 루프트게퀼트(Luftgekühlt)라는 명칭으로 진행되는 이 행사는 독일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진행됩니다. 또한 카밋 뿐만 아니라 다른 서브컬처 브랜드에도 진심입니다. 2010년대 후반 특이하게 ‘베를린 힙합’이라는 이색 주제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와 함께 스토리텔링을 구현하기도 했습니다.

 

한국타이어를 비롯, 한국앤컴퍼니는 최근 들어 혁신과 변화에 사활을 건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소 구호처럼 들리는 부분도 있지만, 체급을 감안하면 ‘이 정도 대기업이 이런 시도까지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 만큼 대담한 것도 있습니다. 이번 까쥬 행사는 이런 시도를 한번에 다 모아서 보여주려는 의도가 강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총론적인 시도와 프로그램 단위의 분할 시도가 일정 주기로 순환된다면 좋은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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