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 뉴욕에서 공개된 재규어 타입 01

플랫폼의 한계와 통합자의 부재, 외통수에 걸린 JLR
뉴욕 현지 시간으로 10월 7일, 재규어가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GT 타입 01(Type 01)을 발표했습니다. 이 차는 그토록 비난받았던 전임자 제리 맥거번의 작업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컨셉트카보다 먼저였던 재규어 타입 01
활기 넘치는 모더니즘(Exuberant Modernism)이라는 재규어의 디자인 철학을 적용한 최초의 양산차로, 긴 보닛과 매끄러운 실루엣, 재규어 선대 모델의 상징적인 계보를 이어가는…. 타입 01을 소개하는 JLR의 보도자료입니다. 2025년 실물을 드러냈던 타입 00 컨셉트카에 대한 설명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순서가 그렇습니다. 양산차인 타입 01의 개념은 먼저 나온 상태였고 타입 00은 그 특징만을 다소 과장되게 압축해놓은 결과물이었으니까요. 2024년 아우디로 이적한 마시모 프라셀라(Massimo Frascella), 앤디 휠(Andy Wheel)등이 이를 맡았죠. 사실 제리 맥거번(Gerry Macgovern)은 이 프로젝트에서 재규어 전체의 리브랜딩을 맡았던 사람이지 디자인의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보여주지 않아도 타입 00과 타입 01을 나란히 놓고 비교했을 때, 4개의 도어를 제외하고 쉽사리 구분해낼 수 있는 디자인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전체적인 형태 뿐만 아니라 전륜의 휠 하우스와 1열 도어 사이 하단에 있는 리프(leap) 장식까지 유사합니다. 실내를 양분하는 척추 같은 구조도 맥거번 재직 시절에 완성된 것이었습니다.
맥거번은 억울한 희생양인가?
물론 2026년 3월에 제리 맥거번이 공식적으로 평온하게 퇴임할 때까지나 그 이후로도, 이 디자인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꽤 자극적으로 다뤄졌습니다. 제리 맥거번의 책상에 해고 통보 문서가 놓여 있었다느니, 경호원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사무실에서 나왔다느니 하는 루머도 돌았죠.

이렇게 이야기가 자극적으로 번진 데는 외적인 요인도 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사람의 메시지였죠. 2024년 11월 19일, 일론 머스크는 구 트위터를 통해 “당신들이 파는 게 차가 맞기는 합니까?(Do you sell cars?)”라고 비꼬았고 트럼프는 2025년 8월에 “어리석고 심각하게 '정치적 올바름(WOKE)'에 절어있는 광고를 만들었고, 그것은 완전히 대재앙이다! 그런 수치스러운 광고를 보고 누가 재규어를 사고 싶겠는가”라며 당시 재규어의 광고 비주얼을 비난했습니다. 특히 머스크야 자기가 디자인부터 설계까지를 다 하는 사람이니 그렇다 쳐도, 트럼프는 자국 정적들을 비난하는 데 재규어를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러려니’가 안 되는 것은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기 때문입니다. 혼란한 세상에서,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일도양단하는 명쾌함에 목마른 이들이 많다는 이야기죠. 물론 이는 거대한 착각입니다.
이 때는 영국의 자존심이기도 한 재규어의 리더십 교체기였는데, 새로운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에게 이런 거대 스피커들의 ‘아무말 대잔치’는 그야말로 제 논에 끌어다 대기에 적합한 물줄기였을 겁니다. 2025년 가을, 미국 대사관 건물을 리모델링해 개장한 챈서리 로즈우드 호텔에서 타입 00을 선보인 이후부터 이듬해 봄에 퇴임 시까지, 맥거번이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JLR에 몸담은 21년 중 가장 모욕적이었던 몇 개월인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에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해당 업계의 전문가도 아니면서 그저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분위기를 선동하고, 업계에서는 그 목소리를 아전인수격으로 끌어들여 누군가를 쓸어보낼 물줄기로 삼으려는 행위와 겹쳐보입니다. 공분, 의분을 느낄 만한 지점입니다.


그렇다고 제리 맥거번이 무조건 억울한 토사구팽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의 디자인 업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랜드로버와 레인지로버의 SUV이고 GT 디자인이 낯설다 하더라도, 디자인의 실무자로서 유능한 동료와 부하들이 있었습니다. 맥거번이 이 프로젝트에서 맡은 일은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을 위시한 브랜딩 전반이죠. 그렇다면 그는 자신의 역할을 못 한 겁니다. 그가 욕을 먹는 것이 억울해야 할 일이라는 게 아니라, 비난의 이유가 정확해야 한다는 겁니다.
전임자 탓과 일치하지 않은 반 년의 운영
맥거번 본인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하더라도, 타입 01을 보며 재규어와 JLR의 행보는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우선 서두에 말한 것처럼 결과물이 맥거번 재직 시절과 거의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미 플랫폼과 디자인 개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간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고 싶겠지만 전기차의 장점이란 게 뭡니까.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의 자유도인데 고민이 있었는지가 의심스럽습니다. 게다가 인테리어까지 초창기 디자인 스케치와 다를 바 없는 분리형 좌석 그대로입니다.
특히 맥거번 사임 이후 크리에이티브를 담당할 조직의 관리를 보면 이런 문제는 더욱 크게 드러납니다. 맥거번은 디자인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 요소들을 포함한 재규어 브랜드의 새로운 방향 건립의 재료로 사용하고 최종적인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반드시 빠르게 대체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 남은 사람들은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디자이너 앤디 휠과 외장의 다비데 리몬젤리(Davide Limongelli), 실내 디자인의 앤드루 하트-배런(Andrew Hart-Barron), 그리고 UX에 해당하는 기능 및 조작 부분 책임자인 다넬라 바냘(Danella Bagnall)이었습니다. 그나마 이들이 크리에이티브 리더십 팀이라는 형태로 조직된 건 맥거번이 퇴임한 3, 4개월 뒤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지금까지 맥거번이 담당했던 일과 비슷한 업무를 하는 사람은 크리스 토프(Chris Thorp) 최고 기업 책임자(대회 홍보 총괄)입니다. 그는 영국 자동차 매체 <오토 익스프레스(Auto Express)> 출신으로 2012년 닛산 홍보 담당으로 이직했고 2014년부터 재규어에 오래 몸담았습니다. 물론 그의 커리어도 착실합니다. 특히 재규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뮬러E 월드 챔피언십의 재규어 TCS 레이싱(Jaguar TCS Racing)팀을 이끌며 11시즌과 12시즌 제조사 챔피언십 2회를 달성하는데도 공헌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는 임원 비서실장을 지냈죠. 모두 그의 대 언론 역량 및 홍보 역량이 빛을 발한 분야입니다. 저도 한 사람의 언론인으로서 꿈 같은 진로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커리어에서 디자인을 기반으로한 브랜딩과 관련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저널리즘과 글로벌 PR 전략 경험도 매우 훌륭한 이력이지만 브랜딩은 디자인을 알아야 합니다. 언론인으로서의 경력은 디자인의 기능적 요소를 대중의 이해와 맞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역량인 것이죠. 그런 역할 없이 디자인 리더십 조직에 자유도를 준다고 하면 디자이너들이 달가워할까요? 목표 없이 노만 잘 저으면 된다고 하고 선장은 떠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격은 경쟁력 있지만 향후 전략은 과제
물론 이런 사정과 별개로, 타입 01이라는 GT가 완전히 의미 없는 차냐면,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SUV에 치중됐던 고성능 전기차 영역에서, 부유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여전히 세단이나 쿠페를 지향하는 디자인의 GT가 필요합니다. 폴스타도 그렇고 적어도 프리미엄급 이상을 지향하는 브랜드들이 공히 인식하고 있는 목표죠.
118kW의 배터리를 품은 전용 전기차 아키텍처 JEA(Jaguar Electric Architecture)는 성능 면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세 개의 모터를 적용해 합산 최고 출력 1,030ps, 최대 토크 139.2kgf∙m을 발휘합니다. -→100km/h 도달 시간은 3.2초입니다. 단순 순간 가속보다 인텔리전트 토크 벡터링(지능형 구동력 배분) 시스템을 통해 GT다운 절제된 하중 이동과 승차감을 만들어내는 데 목표를 뒀습니다.


특히 포뮬러E에서 쌓은 배터리 관리 기술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850V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JLR의 고객 주행 데이터 분석 기준 전체 주행의 최대 99.7%를 중간 충전 없이 주행할 수 있다는 것도 의미 있습니다. 유럽에서 사용하는 WLTP 기준으로 1회 완충 시 주행 거리는 최대 720km를 주행할 수 있으며 350kW급 급속 충전을 사용하면 13분 만에 321km를 주행할 수 있는 전력을 채울 수 있습니다.
가격도 약 13만 파운드 한화 기준으로 2억 3,000만 원 내외라는 점입니다. 전장 5,235mm, 휠베이스 3,200mm의 크기와 앞서 설명한 성능 등을 감안했을 때 동급 차종 대비해서는 조금 낮은 가격입니다. 포르쉐의 타이칸 터보 GT가 18만 2,000파운드, 한화로 약 3억 원 정도죠. 타입 01과는 지향점이 약간 다른 로터스의 에메야 R이 12만 9,950파운드이니 전기 GT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은 어느 정도 갖춘 셈입니다.
로든 글로버(Rawdon Glover) 재규어 매니징 디렉터는 재규어 타입 01에 대해 “강렬한 디자인과 매혹적인 주행 경험 등 재규어의 정수를 담은 럭셔리 그랜드 투어러”로 정의하면서 “브랜드의 새로운 시작 기반이며 사고 싶은 차이자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브랜드여야 한다”라며 브랜드의 지향점을 밝혔습니다. 사실 로든 글로버 디렉터 역시 서 있는 자리가 편안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가 19년간 몸담았던 폭스바겐 그룹에서 재규어로 넘어왔을 때, 재규어는 이미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서 백기를 든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으며 그 상황이 크게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사실상 본사가 쫓아낸 것과 다름없는 거장의 유산을 그대로 들고 새 시대를 위한 기반이라 말해야 하니 곤욕스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재규어는 이 GT를 조금이라도 더 개선해서, 시장에서 존재감 있는 모델로 끌어올릴 수 있을까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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