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4륜 구동, 견고함과 부드러움의 공존
“일본 차는 이제 한국 차에게 안 된다”, “연비 빼면 볼 것 없다.” 렉서스 제외, 일본 차를 리뷰한다거나 구매한다고 하면 흔히 나오는 말. 물론 일본 브랜드 차량들이 갖고 있는 절대적 위상이나 신뢰도가 낮아진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지켜지고 있는 핵심적 가치, 주행, 실제 보유시 체감 내구성 등에 있어서 동일 세그먼트, 비슷한 가격대 차종에 비해 갖는 우위는 여전하다.
혼다CR-V 하이브리드 시승
조화의 끝판왕
혼다 CR-V 하이브리드 AWD
6세대 CR-V에는 1.5리터 터보라는 선택지도 있지만, 하이브리드는 전혀 다른 차다. 동력 수치 업그레이드는 물론 제어 성능이 더 정교해진 모터 구동, 그리고 직분사로 바뀐 2.0리터 i-VTEC 엔진의 활기, 정숙성, 효율, 그 모든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2023년 10월 맛보기 시승한 이후 본격적으로 재회한 혼다 CR-V 하이브리드 AWD(전자식 4륜 구동)은 전륜 구동 모델과도 차원을 달리 한다. 휠베이스를 늘이고도회전 반경을 줄인 파일럿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혼다는 온로드 AWD에 진심이다. 전∙후륜의 토크 조화, 후륜 디퍼렌셜의 정밀한 제어 등은 짧은 U턴 반경과 오르막 내리막을 가리지 않는 선회 구간에서의 역량으로 나타난다. 전륜 구동 기반 4륜 구동임에도 직관적이고 군더더기 없는 주행 감각은 비할 데가 없다. 동급 국산 4륜 구동 SUV는 물론이고 토요타 라브4 등과 비교했을 때도 조향 명확성은 우위에 있다.명확성만 따지만 푸조 3008이 막상막하지만 푸조는 다소 딱딱한 느낌에 가깝다. 전륜 구동이라는 한계도 있다. 무엇보다 현재로서는 국내에 들어오는 모델의 동력 사양이 좋지 않다.
2.0리터 엔진은 직분사 방식으로 바뀌면서 최대 토크가 18.6kg∙m로 소폭 상승하고 그 구간도 넓어졌다. 스포츠 모드를 가동하고 가속 페달을 세게 밟으면 꽤 다이내믹한 소리도 난다. 아무래도 모터사이클로 유명한 기업이다 보니 소리 자체는 바이크 소리처럼 가벼운데 또 그만의 맛이 있다. 오히려 이전의 앳킨슨 사이클보다 회전 시의 질감은 더 부드럽게 느껴진다. 여기에 4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직경이 큰 트랙션 모터의 위치를 바꿔 모터의 구동 토크도 강화했다. 초반에 밀고 나가는 힘에 더해 AWD의 안정감이 더해져 가속 시에도 차가 들뜨지 않아서 좋다. 국산차 1.6리터 가솔린 터보 하이브리드보다 시스템 총 출력에서는 약간 밀리지만 부드럽고 유기적이라는 점에서는 앞선다. 높은 확률로 정비성과 내구성에서도 장점이 있을 것이다.
CR-V의 주행에는 날씨가 없다
주행 코스는 서울-양양 고속도로 그리고 강촌 IC 에서 나와 춘천 남한강변으로 이어지는 국도 구간이었다. 남양주와 하남의 경계에 있는 미사대교, 북한강 위에 걸린 서종대교는 지형적 영향으로 봄철 측면 강풍이 강력한 곳이다. 비슷한 시기에 개발되고 출시된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경우, 파워트레인과 브레이크의 적절한 조절을 통해 코너나 강한 횡풍이 부는 곳에서 안정성을 구현할 수 있는 모션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활용한다. 그러나 CR-V 하이브리드는 네 바퀴의 조화를 통해 안정성을 구현한다. 실제로 차를 때리는 바람의 기척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차의 움직임에 간섭을 주지 않았다. 테일게이트 측면의 각이 어느 정도 있는 모델임에도 후륜이 마찰력을 유지해주니 운전에 두려움을 느낄 수 없었다.
또한 이 지역에는 봄철과 초여름에 폭우도 종종 쏟아진다. 따라서 사고도 많다. 야간에 비까지 내리면 으스스한 구간이 적지 않다. 시승 중 딱 이 조건에 당첨이었다. 사실 오전부터 어깨가 시원찮아 비를 예감하고 있었다.
절대 주행 거리가 긴 상태는 아니었으므로 타이어 상태 자체가 좋았던 덕분도 있지만 비의 영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고저차와 고속 커브 구간이 이어지는 설악면 구간에서도 마찰력은 끈질기고 견고했다. 타이어는 미쉐린이고 단면폭 235㎜, 단면폭 55%, 휠직경은 19인치다. 이전 세대와 동일하지만 윤거(바퀴 사이 폭)이 10㎜씩 확장됐다.
직접 느끼기에, 여기에는 구동 방식의 영향도 있겠으나 자연스럽게 지면 가까이로 내려앉은 무게 중심 덕분으로 여겨진다. CR-V 6세대와 어코드 하이브리드 11세대 그리고 4세대의 파일럿을 개발하며 혼다가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 중의 하나는 섀시 각 부위의 고무 부싱재였다. 이것의 크기와 충격 수용 능력을 키우고 내구성을 강화하면서, 섀시에서 강한 물리력을 버텨내야 하는 부분의 유연성이 강화됐다. 쇼크 업소버 감쇠력으로 만드는 부드러움이나 딱딱함의 개념과는 다른, 원초적인 엔지니어링인 것이다. 이런 것이 결국 도로의 선형이나 날씨의 조건 등의 영향을 편안하게 소화하는 차체를 만든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길에서도 마찰력의 한계는 멀리 있다. 마른 노면 기준의 제한 속력까지 충분히 낼 수 있고 추월도 어렵지 않다.
운전자를 침착하게 하는 안락감과 정숙성
CR-V 하이브리드의 장점은 운전자가 항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물론 고성능 SUV 같은 흥분감을 생각한다면 재미없을 수는 있지만, 반대로 어떤 노면 조건이나 상황에서도 운전자가 당황하지 않고 반응할 정서적 여유를 준다.
특히 회생 제동 자체가 강화되긴 했지만 필요할 때 전개되는 유압 브레이크의 배력이 매우 유연하게 연결된다. 그러면서 강한 제동 시에 차가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혼다 차량의 밸런스를 굳이 이야기하는 것은 지루하지만 사실이다.
전 세대의 심플한 구조를 이어받되 측면 볼륨감을 약간 확대한 시트 역시 피로감을 주지 않는다. 다만 하체를 지지하는 좌대 전후 길이가 약간 짧아 키가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운전자라면 약간 낚시 의자에 앉는 듯한 느낌을 줄 수는 있다. 물론 한국보다 운전자의 평균 신장이 큰 북미나 유럽에서 수십 년 간 잘 팔리고 있으니 그리 치명적인 요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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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은 다양하다. 그러나 한 차가 그 모든 즐거움을 다 줄 수 없으며 차종마다 장기가 있는 법이다. CR-V 하이브리드는 안정에 방점을 둔 모델이다. CR-V라는 차종이 갖고 있던 견고한 가치에 하이브리드와 4륜 구동의 절묘한 결합으로 이룬 안정성은, 단연 동급 최고다. 다만 그간에는 브랜드 전체에 대한 마케팅이 부족했는데, 최근 혼다코리아는 복합 체험공간을 오픈하는 등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판매 단계에서 약간의 아이디어만 더해진다면 과거처럼 수입차 1위를 찍지는 못하더라도 다시금 준수한 판매량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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