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페라리보다 날카롭다, 페라리 296 스페치알레 라인업 공개
- 한명륜 기자
- 5월 1일
- 4분 분량
GTB 스페치알레・GTS 스페치알레 A
“날은 한없이 얇아져서, 없음을 지향하는 것이오. 날은 빈 것이오. 그러나 없는 것이 아니라, 있음과 없음의 사이에서 가장 확실히 있는 것이오.”
김훈, ⟪현의 노래⟫ 중에서

망해가는 가야의 대장장이 야로가, 악기를 만들 연장을 구하러 온 악사 우륵에게 전하는 말입니다. 있음을 다가옴으로, 없음을 사라짐으로 치환하면 어떨까요. 빠르기의 실체가 그런 것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나타남과 사라짐의 경계가 극히 예리하고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차의 빠름을 날카롭다고도 합니다. 특히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자세로 빠르게 코너를 돌아가는 차의 궤적은 말 그대로 칼날이죠.
페라리 296 스페치알레
4월 29일, 페라리가 V6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296 라인업의 스페치알레 버전을 공개했습니다. 베를리네타(2+2 쿠페)인 GTB 기반 스페치알레와 스파이더인 GTS 기반 스페치알레 A가 그것인데요. 엔진과 차체의 무게를 덜어내고, 파워유닛의 성능은 업그레이드했습니다.

사실 페라리는 속력에 기반한 날카로움만을 지향하는 브랜드는 아닙니다. 그러나 296 스페치알레 라인업은 그 어떤 페라리보다 날카로울 것으로 기대됩니다. 지난 해 296 GTS를 시승하며 코너를 주행할 때, 바퀴 바로 옆이 절벽인 길이라도 주행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296에서 뭘 경험했든 스페치알레는 그 이상의 경험을 줄 것 같습니다.
더 가벼워진 엔진
499P의 감동을 공도로 옮기다
엔진은 자동차의 심장이지만 동시에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무게이기도 합니다. 296 스페치알레와 스페치알레 A의 엔진은 기존 대비 9kg의 무게를 덜어냈습니다. 커넥팅 로드 소재는 강철 대비 35% 가벼운 티타늄이며, 크랭크축도 질화강을 적용했습니다. 덕분에 총 모듈 무게가 2.2kg 줄었습니다. 여기에 볼트, 터빈 하우징 등도 경량화했습니다. 이는 2023, 2024년 르망 24시 내구레이스 우승을 거머쥔 머신인 499P의 솔루션입니다.

아키텍처는 동일합니다. 120º 뱅크각의 V6 2,992cc 엔진은 가운데 한 쌍의 터보차저를 장착한 방식으로 무게 중심을 낮추는 한편 독특한 구동음을 자랑합니다. 압축비는 9.4:1이며 기존 대비 37ps 업그레이드된 700ps(8,000rpm)의 최고 출력을 자랑합니다. 최대 토크는 79kg∙m(6,000rpm), 최고 회전수는 8,500rpm에 달합니다. 배기음에서는 3, 6, 9배의 배음을 강조해 전체적으로 더욱 날카로운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변속기는 추가적인 허용 토크를 구현하는 8단 DCT가 결합돼 운전의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구동 모터인 e 드라이브 모드 최고 출력은 113kw(154ps)이며 시스템 합산 출력은 총 880ps입니다. 공차 중량이 1,410kg에 불과합니다. 단위 출력 당 건조 중량은 스페치알레의 경우 1.6kg, 스페치알레 A의 경우 1.69kg입니다.
드라이브 모드인 마네티노 매뉴얼에서도 향상된 모터 시스템에 의한 퍼포먼스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스티어링휠의 e 마네티노를 퀄리파이 모드로 설정하면 엑스트라 부스트 모드를 통해 6,000~8,500rpm 구간에서 180ps의 315N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합니다. 기존 모델 대비 13ps 높은 수치입니다. e-드라이브는 MGU-K만으로 구동되며 최고 속력 135k/h, 최대 25km를 주행할 수 있죠. 하이브리드 모드에서의 최고 속력은 125km/h로 제한됩니다.
차별화된 공력성능
원메이크 레이스 296 챌린지에서 얻은 데이터
두 차종 모두 250km/h 주행 시, 기본 모델 데비 20% 강한 총 435kg(스페치알레 A의 경우 탑을 닫았을 때)의 다운 포스가 생성됩니다. 둘 다 전산유체역학(CFD)에 의한 시뮬레이션이 적용됐는데 스페치알레의 경우에는 스타일과 공력 성능, 스페치알레 A의 경우에는 오픈 탑 주행 시 실내 난류 최소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약간 다릅니다.
두 모델 모두 리어 스포일러는 액추에이터를 통해 작동되며 로우 드래그(LD)와 하이드래그(HD)의 전환 시간이 기본 모델의 50%로 단축됐습니다. 사이드 윙에는 FXX-K에 적용된 수직 핀과 소형 윙, 그리고 296 챌린지의 리어 범퍼 외곽 수직 프로파일을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프런트의 공력 부품은 주행 중 차가 마주하는 직접적 공기 저항과 파워트레인 및 브레이크의 냉각에 기여합니다. 전면 하단의 에어로댐퍼는 내구레이스에 참여하는 296 GT3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296 스페치알레 모델들의 프런트 범퍼는 공기 흐름을 차체 밖으로 유도라고 항력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형상으로 재조정됐습니다. 이 기능이 더 효과적으로 구현되도록 기여하는 것이 프론트 휠 아치 의 실 커버(sill cover)로 보텍스 제네레이터(vortex generator, 와류 생성기)로 유도된 공기를 차량 후측면으로 원활하게 유도합니다. 이를 통해 고속으로 갈수록, 직진 주로든 코너링이든 가리지 않고 차가 딱 붙어 움직이는 듯한 운동 성능을 발휘하게 되죠.

엔초 페라리는 “에어로다이내믹이란 강한 엔진을 못 만드는 제조사나 신경쓰는 것”이라 했다지만, 지금의 시대에는 레이 머신이나 슈퍼카나 에어로다이내믹을 잡지 못하고서는 우수한 성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페라리 연구원들이 엔진만큼이나 여기에 신경쓰고 있죠. 사실 창업주의 말은 큰 틀, 즉 그 말을 한 목적에서 받아들이는 게 맞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잘한 말에는 오류가 있을 수도 있죠.
트랙의 감성을 입은
296 스페치알레 라인업의 디자인
외관은 기본적으로 페라리 296 스페치알레는 GTB의 쿠페 형상을, 스페치알레 A는 GTS의 형상을 계승했습니다. 플라비오 만조니가 이끄는 페라리 스타일링 팀은 각각의 고유한 디자인을 살리면서 스페치알레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특히 스페치알레 A가 쿠페의 디자인 요소를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대부분의 컨버터블, 스파이더가 쿠페 대비 다소 어색한 디자인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페라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엔진이 이렇게 뒤에 있는 스파이더의 경우 수납 공간을 확보하면서도 탑을 열었을 때나 닫았을 때나 모두 쿠페다운 라인업을 갖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페라리 스타일링 팀은 엔진 커버를 더욱 깊이 배치하고 불필요한 볼륨감을 덜어냄으로써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보다 트랙 지향형 머신에 가까운 감각을 갖게 된 것이죠.
296 스페치알레는 베르데 뉘르부르크링(Verde Nürburgring) 즉 그린 뉘르부르크링이며 스페치알레 A는 로쏘 디노(Rosso Dino)입니다. 디노는 6기통 페라리를 가리키는 이름이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엔초 페라리의 아들 디노를 기린 것으로도 유명하죠. 레이스카처럼 차량의 전후를 연결하는 하나 혹은 두 개의 세로 스트라이프 패턴을 선택할 수 있는데, 두 차 모두 이번에 처음으로 화이트 리버리를 선택할 수 있게 됐고, 0에서 99까지의 숫자도 고를 수 있게 됐습니다.


북미 기준으로 GTB 스페치알레는 2026년 1분기, GTS 스페치알레 A는 그 다음 분기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외신들은 두 모델이 기본이 되는 GTB, GTS보다 약 13만 달러 이상 높은 약 50만 달러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 시장도 페라리에 대한 구매력이 높아졌고 최근 들어 다른 모델들도 국내 도입 시기가 빨라진만큼 296의 스페치알레 모델들도 글로벌 인도와 큰 차이 없는 시기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한편 페라리 12 칠린드리와 12칠린드리(도디치 칠린드리) 스파이더가 2025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최고 영예인 ‘골드 어워드(Gold Award)’를 수상했습니다. 특히 특히 전체 75개의 골드 어워드 수상작 가운데 자동차로는 페라리 12 칠린드리가 유일한 수상입니다. 12 칠린드리는 푸로산게 등과 함께 페라리의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의 계보를 잇는 모델로, 2024년 한국에서도 선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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