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 오버랜딩 허용, 소멸 위기 지역 경제효과 제고 등 상상력 발휘해야
개인적으로 오버랜딩(overlanding)을 좋아하진 않는다. 잘 닦인 길에서의 편한 주행을 선호한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는 것과 선택지 자체가 없는 건 다른 문제다. 국토 70%가 산지인데, 합법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레저 임도는 전무하다. 산림 자원의 활용에 상상력이 너무 부족한 것 아닐까? 지프의 루비콘, 포드 브롱코 등을 몰고 이 산 저 산 입구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말아야 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58년의 역사
이스터 지프 사파리가 시사하는 것
매년 부활절, 미국의 유타 주 모압에서는 지프 오너들이 모이는 ‘이스터 지프 사파리(Easter Jeep Safari)’라는 트레일 주행 행사가 열린다. 2024년은 58회째다. 원래 지역의 ‘레드 락 휠러즈’라는 동호회가 주축이 됐고 그것이 커져 지프가 후원까지 하는 형태로 발전했다. 이스터 지프 사파리는 오버랜딩(overlanding)이라는 지프의 본질을 보여 주는 행사다. 장애물을 극복해가며 길을 찾고, 그 과정에서 잊어버렸던 도전과 모험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주행, 오버랜딩의 정의 그 자체를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많이 나왔다. 지역이 워낙 넓다 보니 주행 경로에 항공기로 아이스크림 박스를 투하했다고도 한다. 지프가 선보이는 이스터 지프 사파리 컨셉트카도 볼거리다. 이 행사의 참가비는 차량 1대당 하루 75달러이고 지역 내 캠핑 시설 및 식당을 이용할 경우 연계하는 요금 체계도 있다. 이 행사는 갈수록 커지고 있고 미국 전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에서 차를 싣고 와 참가하는 이들도 있다. 유타 주는 산업 기반이 매우 척박한 곳인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관광 경제 효과도 발생한다.
“신고당하실 거예요, 가지 마세요”
산 앞에서 작아지는 랭글러∙디펜더라니
한국에서도 아웃도어 레저 자체의 인기는 높지만 오프로더 기반 오버랜딩은 그리 인기를 얻지 못했다. 사실 오버랜딩의 기회 자체가 한국에선 차단돼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선 도로법에는 임도가 도로 시설로 명시돼 있지 않다. 자연공원법, 녹지법 등에서는 임도를 산림자원의 관리를 위한 용도의 도로 외에는 출입이나 주행을 제한하고 있으며, 시행령을 통해 임도에서의 주행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산촌 지역에 주거하는 이들이나 캠핑 등을 즐기는 이들 사이에서 이를 곧이곧대로 지키는 이들은 드물다. 실제로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 보면 동호회 회원들이 단체 주행을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 해당 장소는 동호회 사이에서도 꽤 이름이 나 있다.
그렇다고 오버랜딩이 관련 규정을 사문화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최소한의 취재나 보도 윤리를 생각해야 하는 매체의 시승기라면 더 부담이 있다. 실제로 이번에 지프 랭글러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임도 주행을 해보기 위해, 임도로 유명한 몇 군데 지역의 관할 산림청 및 관할 지자체에 문의한 바 있다. 돌아온 답은 다음과 같았다.
“저희가 실제 단속을 진행하거나 들어가지 말라는 말은 못합니다. 하지만 지나가시던 분들이 촬영해서 신고할 겁니다. 영상 올리시면 그 영상 보고도 신고할 거예요.” 최근의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개연성 있는 이야기였다.
지역민들과의 갈등
신고에는 이유가 있다
사실 신고의 이유는 명확하다. 일단 2륜 이상의 원동기 장치로 임도를 주행하는 것이 불법이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신고를 결심할 만큼의 불편을, 임도에 진입한 차로 인해 경험했다는 것이다. 통상 이런 임도에는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이나 생업을 위해 출입하는 보행자들도 있다. 이들과 차가 마주쳤다면 필연적으로 불편을 겪었을 것이다.
또한 오버랜딩 자체가 일정 정도의 훼손 행위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특히 차량 하부가 큰 충격을 지속적으로 받을 때 냉각수나 오일류가 새 나오는데 이것 자체가 토양에 좋을 리 없는 오염 물질들이다. 또한 완전 전동화된 오프로더는 아직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므로 배기가스도 부정할 수 없는 오염원이다. 여기에 쓰레기 투척 등 수준 미달의 행태를 보여주는 이들도 있다. 일부라 하기엔 문제 사례가 크다.
유료형 테마 임도 불가능할까?
지역 경제 보탬, 방문객 수준 자정효과
불법이 됐건, 신고가 됐건 레저 목적의 임도 통행은 지속되고 늘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이 장르 자체는 위축되고 있지만 국내 시장에는 이전 대비 험로 지향형 차량들의 선택지는 넓어지는 상황이다. 지프 랭글러, 포드 브롱코, 럭셔리 오프로더인 랜드로버 디펜더 등 현재 라인업도 다양하다. 여기에 내년에는 기아가 모하비 기반의 픽업트럭 타스만을 내놓을 예정이다.
또한 미약한 규모인 튜닝과 애프터마켓 영역에서도, 이 오버랜딩 쪽은 나름대로 활성화돼 있다. 북미에서 오버랜딩이 대중적인 레저라면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는 이들의 자동차 레저인 셈이다. 마음만 먹으면 동남아 등으로 가 얼마든지 이런 오버랜딩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런데 한국에 유사한 환경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런 이들을 그대로 놓쳐 버린다면 그것 또한 아쉬운 일이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차라리 몇 군데의 임도를 오버랜딩 테마파크로 운영하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물론 지금도 테마형 임도를 운영하는 지자체가 있지만 이는 거의 트레킹 용도다. 임도에 자동차가 들어가는 것을 법으로 허용한다는 것은 입법적인 문제이므로 이에 대해서는 정책의 입안자들이나 정책의 수요자인 지역민들 모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다. 다만 사유지나 공원법으로 보존해야 하는 산림이 아닌 국유림의 경우, 도로의 이용에 대한 유권 해석의 여지가 존재한다.
주행을 허가할 때 일정 이상의 금액을 내도록 하는 방식도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가격은 약간 높게 책정해 도로 관리비 등의 제원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해당 지역의 숙박, 식음, 특산물 등과 연계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또한 오프로더라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이나 향후 등장할 순수 전기차 기반의 오프로더라면 이용료를 감면해주는 것도 방법이다.
또한 만약 산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 사업자가 사유 임도를 개방해 운영 한다면 지자체가 행정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제세 감면의 혜택 등을 제시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높은 도로 포장률은 세계적으로도 부러움을 살 만한 일상 생활의 첨단화를 이끌었다. 읍, 면, 리 단위까지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가 아니었다면 이커머스가 지금처럼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좋은 포장 도로를 버리고 오프로드를 찾아가는 오버랜딩이, 그것도 비싼 차를 갖고 주행하는 일은 일견 역행적이고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자동차 문화의 다양성 속에,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적 어려움에 대한 의외의 다양한 힌트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국토의 자원적 활용과 자동차 문화의 접점을 만드는 데 있어서 좀 더 상상력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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