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유럽의 물류 전동화, 한국 주류 재정학 전문가들은 정반대
글로벌 최대의 상용차 제조사 중 하나인 만(MAN)이 대형 전기트럭 e트럭의 유럽 판매를 시작했다. MAN e트럭은 공식 판매 개시 이전에 이미 600여 건의 주문 문의가 접수됐으며, 고객 인도는 2024년 초에 개시될 예정이다. 스카니아와 볼보, 다임러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유럽에서는 대형 상용차의 전동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정책적 차이의 원인은 무엇이며 어느 것이 바람직한 방향일까?
전기트럭, 유럽은 사실상 법적 강제
물류 전동화는 생존 문제
유럽이 트럭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는 프랑스와 독일이다. 2023년 현재, 프랑스의 경우 트럭 구매 보조금은 세금을 포함한 차량 가격의 40%에 달하며 개인은 최대 6,000유로(한화 약 847만 원), 법인은 4,000유로(565만 원)이다. 연 소득 1만 4,089유로(약 2,000만 원)이 넘지 않는 개인의 경우 2,000유로를 추가 다해 총 7,000유로(989만 원)를 지원한다. 이 외에 중고 전기차 및 중고 수소연료전지 트럭은 1,000유로(141만 원)까지 지원한다.
독일의 경우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금액도 상한선이 없다. 동급 디젤 트럭과의 차액 80%를 보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기트럭의 디젤 엔진 교체 효과를 보다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예컨대 이번에 출시된 만 e-TGX와 디젤 TGX 사이에 5~6,000 유로 차이가 있다면 4,000~4,800유로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유럽 트럭 운전 노동자들의 평균적인 연수입은 약 4만 6,000유로(6,500만 원)이다.
그런데 독일과 프랑스 역시 내년부터는 보조금 지급 요건을 까다롭게 한다. 금액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주행 중 탄소배출량만이 아니라 제품의 제조 단계는 물론 원료 조달 과정에서 배출하는 탄소배출량을 계산해 보조금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동차는 제조업 중에서도 물류에 의존하는 바가 크다. 트럭에 대해 제품 전 주기의 탄소배출량을 저감하라는 요구는, 한 번만 받아들이면 연쇄적인 탄소 저감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 만트럭이 더 많은 e-TGX의 생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e-TGX와 같은 전동화 트럭을 사용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운송 단계에서의 탄소 저감이 이뤄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범 폭스바겐그룹 차원에서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자연스럽게 승용차 제조 단계에서의 탄소 저감도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유럽은 트럭에 대한 물류 의존도가 높다. 여러 국가들이 한 대륙에 있기 때문에 무역도 트럭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특히 2022~2023년 심각한 가뭄으로 인해 유럽 북중부 내륙 수운을 담당하는 라인 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트럭 물류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탄소배출량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그 심각성을 느끼는 이들이 많지 않지만 유럽에서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 1.5도 이하를 실질적인 문제로 여긴다.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한국에 비해 훨씬 가시적이고 파괴적이기 때문이다. 기업 차원에서의 인식도 다급하다. 만트럭과 볼보 트럭부문은 2030년까지 전체 트럭 판매량의 50%를 전기트럭으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 외에 이베코, 다임러, 르노 등도 순수 전기트럭의 개발을 통해 트럭 기반 물류 체계에서의 탄소배출량을 저감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재정학회와 정부 상용전기차 보조금 부정적
순수한 정책적 고려인가?
한국에서는 전동화를 통한 탄소 저감이라는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 유럽과는 정반대의 정책적 방향이 설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27일, 충남대 경제학과의 전호철 교수는 한국재정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소형화물차의 생애주기 17.3년 동안 디젤 엔진은 435만 원, 전기는 232만 원의 환경피해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평가됐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전기화물차의 환경편익이 대당 203만 원에 불과해 현재 지급되는 1,000만 원 이상의 보조금이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이를 토대로 현재 기준으로 보면 2023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달성 측면에서는 차라리 전기 소형상용차보다 승용차에 보조금을 더 주는 편이 유리하다고 전했다.
사실 포터, 봉고3 등 1톤 트럭에 집중된 소형상용차만을 생각하면 이 계산이 맞다. 하지만 물류 체계 전체에서의 탄소 저감이라는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임을 감안한다면, 소형상용차보다 이동량이 많은 장거리 물류 트럭의 전동화를 보조할 필요성으로 논의가 이어져야 하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더구나 해당 논문에서는 전기 소형상용차의 주행거리가 일정 이상이 되지 않아 실질적인 환경편이기 많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는데, 그렇다면 이는 더더욱 장거리 물류 트럭 사업자 및 운수 기업의 전동화에 대한 화두를 던져야 할 근거가 된다.
물론 대형 트럭은 충전 인프라 면에서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이렇게 장거리 물류를 사용하고, 필요로 하는 기업은 정해져 있다. 충전 네트워크는 이러한 기업들의 거점으로 해, 대형 상용차용 충전 시설을 만들고, 이를 갖추는 기업에 추가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실 세계 무역 질서에서 탄소 저감은 매우 심각한 이슈이고 한국의 경제에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사안이다. 여기서 물류 운송의 전동화는 일종의 키다. 그럼에도 이 문제에 대한 정책적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충전소에 온통 포터와 봉고 뿐이더라’라는 불만의 표면에만 겉핥기 식으로 접근하는 정책적 아이디어의 빈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학회에서 발표하는 학자는 좁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야 논거의 통일이 용이하고 깔끔한 논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정책적인 소스로 활용하는 정부의 시각은 넓어야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부의 전동화 관련 정책에 대해, 재정비하겠다는 말이 아직 구체적 로드맵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것 뿐만 아니라 지금쯤 예고됐어야 할 많은 정책 비전들이 예년 대비 늦게 나온다. 내년 총선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이슈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건드리겠다는 ‘총선 모드’에 대한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하지만 탄소 저감에 대한 전략을 물류 전동화로 풀어낼 묘수를 빨리 찾지 않는다면 총선에서 여야 누가 이기건 그 부담을 크게 짊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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