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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상대적일 뿐” 불굴의 레이서, 알레산드로 자나르디 향년 59세로 타계

  • 작성자 사진: 한명륜 기자
    한명륜 기자
  • 5월 3일
  • 4분 분량

2026년 5월 1일 고향 볼로냐에서…2020년 자전거 대회 사고 후 6년만

“깨어났을 때 나는 두 다리를 잃은 것을 알았지만, 남은 절반을 바라보았습니다.”

 

Alessandro “Alex” Zanardi, 1966. 10. 23~2026. 5. 1
알레산드로 “알렉스” 자나르디(Alessandro “Alex” Zanardi, 1966. 10. 23~2026. 5. 1)

명언집을 외우고 살던 사람이라도, 막상 이런 사고를 실제 당했을 때 이런 말을 하긴 쉽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이 말을 실제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알레산드로 “알렉스” 자나르디(Alessandro “Alex” Zanardi, 1966. 10. 23~2026. 5. 1). F1을 포함한 다양한 카테고리의 모터스포츠와 핸드사이클에서 ‘불굴’이 무엇인지를 입증한 인물. 그가 2026년 5월 1일, 고향 볼로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레산드로 자나르디

 

 

쾌유를 기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곁으로

2020년 핸드사이클 사고 이후 혼수상태 반복, 상태 나빠져

 

자나르디는 2020년 6월 19일, 이탈리아 피엔차에서의 자선 경주대회에서 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업계의 모든 동료와 언론은 그가 ‘투사’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53세인 그가 안면을 재건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머리 부상까지 완벽히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인공 코마 상태에서 몇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18개월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2020년 12월 경에야 자발 호흡이 가능했고 간단한 언어적 의사 소통이 가능했지만, 병원에서는 갈수록 상황이 나빠질 것을 경고했습니다. 다만 집에서의 편안한 환경이 그의 재활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 생각했죠.

 

Zanardi as a four-time Paralympic gold medalist handcyclist
4회의 패럴림픽 금메달을 따낸 핸드 사이클리스트로서의 자나르디

사고 직후,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친애하는 알레산드로에게, 당신이 삶에서 보여준 이야기는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예기치 못한 사고를 겪은 이후에 어떻게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당신은 스포츠를 통해 우리에게 장애 또한 인류의 교훈으로 삼으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주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어 감사합니다. 이 고통스러운 순간에 저는 당신과 함께할 것이며,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고 성모님께서 지켜주시길 빕니다.”

 

그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4월 21일에 선종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나르디가 떠나기 1년 전입니다.

 

 

슈퍼맨이 아닌 낙천주의자

야망보다 스포츠의 가치를 믿은 드라이버

 

다리를 잃은 이후의 자나르디는 4회의 패럴림픽 핸드사이클 금메달리스트로서 유명하지만 모터스포츠를 놓지 않았습니다. 2003년부터 투어링카 레이스에서 출전해 훌륭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슈퍼투리스모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달성하기도 했고 유러피안 투어링카 컵에서도 3위를 달성했습니다. 이후 기량이 하락하긴 했으나 오히려 강인한 체력이 요구되는 GT 시리즈는 물론 내구레이스에도 꾸준히 출전했습니다.

 

BMW sponsored Zanardi to the end
BMW는 자나르디를 끝까지 후원했습니다

사고 이후, 그를 오래 후원해 온 제조사가 바로 BMW입니다. 특히 BMW M8 GTE를 타고 미국 데이토나 24시간 레이스를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 <장애는 상대적이다(Disability is all relative)>는 그 관계를 잘 보여 줍니다. 많은 모터스포츠 팬들은 물론 자나르디 본인도 이 다큐멘터리에 큰 감명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죠.

 

사실 양 다리 전체를 절단하는 정도의 사고를 겪게 되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급성 우울증이 올 수 있습니다. 특지 하지의 경우 절단 부위가 대퇴부처럼 높은 위치일수록 더욱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운동 선수와 일반인들이 차이를 보인다는 다수의 의학 연구 논문 결과가 있습니다.

 

통상 운동 선수들이 큰 장애로 신체 일부를 절단하게 되면 일반인들보다 더 큰 충격과 실의에 바질 것 같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고 합니다. 오히려 스포츠에 매진해 온 삶의 궤적이 오히려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며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실제로 자나르디는 스포츠에 대한 열정에 관한 메시지를 자주 전했습니다. 그러나 스포츠가 주는 결과의 영광이 아닌 과정의 열망을 중시했죠. “진정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정했다면 챔피언이 되는 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일을 해내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어쩌다 챔피언이될 수도 있다.” 목적주의보다 과정에서의 열정이 사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을 꿰뚫어본 메시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절단 환자들에게 심리적 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메시지들도 남겼는데요. 한 번은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다리가 없이 태어난 딸을 데리고 의족 수술을 받으러 온 아버지가 딸에게 드디어 신발을 사줄 수 있게 되어 행복해 보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자나르디는 가까운 주위 사람들에게 영감을 얻는다고 했죠. 이는 절단 환자의 심리적 회복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라 낙천주의자일 뿐이다.” 이 말은 다리를 잃은 이후 자나르디의 업적이 어떤 동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지를 극명히 보여줍니다.

 

 

혼다 NSX 자나르디 에디션이 있다고?

 

자나르디의 외모를 보면 언뜻 아일톤 세나를 연상케 합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코, 선이 선명한 얼굴과 장발이 잘 어울리는 스타일 등이 그렇죠. 세나보다는 6살이 어린데, F1 기준으로 보면 자나르디는 세나의 전성기에 입문했죠. 그가 1994년 로터스 F1 팀으로 활약했을 때 파워 유닛이 바로 혼다였습니. 세나의 전설을 만들어낸 것도 혼다였죠.

 

Honda's NSX Zanardi Edition, 51 units limited(1998)
51대 한정 생산된 혼다 NSX 자나르디 에디션(1998)

물론 자나르디는 F1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긴 선수가 아니라 스쳐간 선수에 가까우므로 직접 비교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픈휠에 재능이 없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1997년과 1998년, 인디카(Indycar)의 전신 격인 CART 2연패를 달성했는데, 이 때의 파워 유닛이 혼다였습니다. 혼다는 이를 기념해 자사 최초의 슈퍼카 NSX의 51대 한정판 모델인 자나르디 에디션(Zanardi Edition)을 춣시합니다. 그가 다리를 잃은 비극이 바로 CART의 유럽 대회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삶이란 이렇게도 기막힌 면이 있는 것인지 먹먹해집니다.

 

 

“속도 제한 있는 곳에서는 지켜라”

시대와 국가를 넘어서는 메시지

 

목적보다 과정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역경에서 일으켜세우는지를 알려준 인물이 바로 자나르디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제’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언급했습니다. 그건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전해져도 마땅할 메시지입니다.

 

“오늘날의 자동차로 사람들이 양심적으로 운전한다면, 특히 고속도로에서 과속하는 것은 전혀 위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이탈리아인들은 교육 수준이 너무 낮아서 독일과 같은 시스템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속도로의 특정 구간에서는 전속력으로 달려도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속도 제한이 있는 곳에서는 모두가 규칙을 준수하며, 우리 이탈리아인들이 그토록 잘 정당화하는 예외 조항은 통하지 않습니다.”

 

Leading motorsports officials around the world are paying tribute to Zanardi.
세계 주요 모터스포츠 관계자들이 자나르디를 추모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탈리아를 한국으로 바꾼다면, 평균 교육 수준이 높다는 것만 제외하고는 ‘뼈를 때리는’ 이야기입니다. SNS에서, 과속이 마치 교통 흐름 개선에 기여하는 대단한 일인 양 말하는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합니다. 아 물론 그래도 닿지 않을 수 있겠죠. 그렇다면 자나르디를 직접 만나서 배우면 될 일입니다.

 

스포츠 영웅의 삶이 전하는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그들이 한계와 싸우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경험담은 일반인들이 삶에서 만날 수 있는 좌절과 절망에 참고 혹은 지지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자나르디처럼 일상 생활조차 쉽지 않은 장애 선수의 성취라면 더욱 그러하죠. 그러나 자나르디의 이야기는 투사의 위대함 이상의 가치를 전합니다. 삶에 대한 겸허함으로 만용을 누르고 과정 속에서 진짜 자신과 이웃에 대한 감사를 느끼라는 것이죠.

 

다시 한 번, 고인의 평화로운 안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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