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Z4X부터 캠리까지
지난 11월 26일, 토요타 캠리의 9세대 하이브리드 모델이 국내에 공식 출시됐다. 2023년의 대미를 장식했던 프리우스 미디어 데이가 12월 5일이었으니 거의 1년인데 시간이 참 빠르다.

시간이 압축된 듯한 느낌은 단지 감상이 아니라 캠리의 디자인에서 느껴지는 프리우스와의 닮음 때문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프리우스를 봤을 때는 그 전의 크라운이 겹쳐지면 6개월여의 시간이 압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새로운 캠리 디자인의 핵심은 ‘해머헤드(hammerhead)’라고 불리는 전면 디자인에 있다. 공식적으로 ‘패밀리룩’이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현재 토요타 라인업이 공유하는 디자인 특징이다. 귀상어에서 따온 이 디자인, 기원과 특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다.
토요타 해머헤드
토요타는 왜 ‘귀상어’를 택했나
해머헤드 디자인 첫 차 BZ4X가 힌트
해머헤드 디자인이 적용된 첫 양산차는 바로 순수 전기 SUV인 BZ4X다. 2023년 국내에서도 대대적인 미디어 시승회를 통해 선보인 후 일단 들여온 물량은 전량 소진됐던 렉서스의 RZ 450e의 기반이 된 차다. 토요타가 전동화에 늦었다고 하지만 e-TNGA라는 플랫폼은, 전기차는 승차감이 나쁘다는 편견은 불식시킴은 물론 무거운 차체에도 불구하고 멋진 핸들링을 보여 줬다. BZ4X는 한국에 출시되지 않아서 알 수 없으나, 고급스러운 사양은 조금 빠졌으되 RZ 450e 못지않은 핸들링을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기회가 되면 다른 나라에서라도 꼭 타 보고 싶은 차다.

“기하학적 선과 감성적인 울림을 조화시키는 면을 조화시켜 대비를 이루고 이를 통해 ‘하이 테크 와 감성(Hi Tech & Emotion)’이라는 디자인 테마를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타다 히로유키
“’BEV(순수전기차)의 얼굴은 어떻게 보여야 할까?’라는 고민 끝에 SUV의 터프함과 BEV의 깔끔한 이미지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습니다. 특히 기능적으로 부품의 최적 위치를 찾는 데 최선을 바쳤습니다.” 혼다 노부히코

2022년 공개된 BZ4X의 외장 디자인을 맡은 두 명의 디자이너의 메시지에 해머헤드 디자인의 답이 있다. 일단 헤드램프의 윤곽과 보닛의 캐릭터라인이 이루는 윤곽선이 귀상어(hammerhead shark)를 닮은 데서 나온 용어인데, 사실 이는 차량의 센서 및 에어로파츠가 집중돼 있는 코너 부분의 기능성을 최대로 살리기 위한 디자인이었다.
흥미롭게도 이는 실제 생물학적으로 귀상어의 요상한 생김새에 얽힌 진화론적 사연을 반영한다. 귀상어의 좌우로 넓은 머리는 방향 전환 시 빠른 속도를 구현한다. 2020년, 미시시피대의 글렌 파슨스(Glenn Parsons) 교수의 연구팀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지에, 머리 크기가 다른 귀상어 8종의 모형을 제작해 유체의 저항과 속력을 실험했는데, 머리가 가장 큰 귀상어일수록 방향 전환을 민첩하게 할 수 있어, 눈 앞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먹잇감을 사냥하기에 유리하다는 가설을 내놓았다. 실제로 머리가 가장 큰 귀상어가 오징어처럼 순간 동작이 빠른 먹이를 주식으로 삼는다고 한다.


또한 이 귀상어의 눈은 머리의 양쪽 끝 전방을 향해 달려 있다. 이 역시 전방에서의 빠른 움직임을 쉽게 포착하기 위한 진화 결과로 알려져 있다.

토요타가 BZ4X 그리고 이를 고급화한 렉서스 RZ 450e을 개발하며, 다른 전기차와 달리 가장 중점을 둔 점이 바로 이 방향 전환의 민첩함이었다. 또한 센서의 위치는 과연 귀상어의 눈이 달려 있는 위치와 대응된다.
같은 해머헤드라도 조금씩 다르다
16세대 크라운과 5세대 프리우스
해머헤드 디자인이 적용된 차량 중 국내에 가장 먼저 선보인 차는 토요타 크라운이다. 오히려 스케치 측면만 보면 크라운의 스케치가 BZ4X보다 더 해머헤드에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크라운은 지상고가 높지만 주행 중 차체 자세 제어가 뛰어나다. 2.4리터 가솔린 터보 기반의 듀얼 부스트는 348ps의 합산 출력과 47kg∙m의 최대 토크를 발휘하는데, 21인치 휠을 장착하고도 부드러운 주행 감각을 전한다. 2.5리터 자연흡기 엔진 기반 하이브리드는 토요타다운 부드러운 항속 질감과 압도적인 연비를 자랑한다.
토요타의 해머헤드 디자인을 보면 보닛 후드가 약간 짧은 대신 전면부 패널과의 단차를 최소화해 부드러운 곡면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이다. 크라운은 차고가 높고 크다 보니 보닛 후드 부분의 곡면과 볼륨감이 좀 더 도톰하다. 그래서 측면에서 봤을 때 좀 더 여유와 품격이 느껴진다.

5세대 프리우스는 아무래도 차급 때문인지 헤드램프 좌우 패널의 마진이 적다. 그리고 보닛 헤드도 조금 더 매끈하게 앞으로 숙인 느낌이다. 사실 프리우스는 전면의 해머헤드 디자인보다도 차량 전체가 갖는 형태인 ‘모노폼 실루엣’이 더 중요한 디자인 테마다. 최고의 공력 성능은 물론, 이전까지의 프리우스 대비 크게 개선된 동력 성능을 기반으로 보다 재미있는 차를 지향하는 것이 5세대의 프리우스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의 합산 최고 출력은 223ps에 달한다. 과거 프리우스에서 볼 수 없던 수치다.

아래를 강조한 해머헤드
9세대 캠리 하이브리드
토요타가 굳이 패밀리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장르가 다른 차를 하나의 디자인 테마로 엮기보다, 하나의 테마가 다른 차종을 만나 어떻게 생동감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브랜드의 역량을 보다 확실히 증명하는 방법이라 여기는 듯하다.

해머헤드 디자인은 차량을 약간 위에서 봤을 때 나오는 윤곽이다. 그러나 캠리의 해머헤드 테마는 그 아래쪽도 강조된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캠리는 세단이다. 물론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세단은 하부의 공력 성능이 중요하며 이것이 주행 질감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세대 교체임에도 휠베이스 수치 변화가 없는(2,825㎜) 조건에서, 하부 디자인을 통한 공력 성능의 개선은 더 절실한 과제였을 것이다. 아직 시승을 해보지 않았지만 많은 해외 리뷰를 보면 동일한 파워트레인과 비슷한 제원 수치이면서도 라이드 앤 핸들링에서 한층 더 개선된 결과를 보여준다고 전한다.
캠리의 헤머해드 디자인에서 귀상어 머리의 전후 폭에 해당되는 해드램프 유닛은 크라운이나 프리우스 대비 좀 더 샤프하고 길다. 보닛 후드의 볼륨감은 크라운과 프리우스의 중간 정도다. 이것이 긴 오버행과 맞물려, 측면 이미지를 훨씬 길어 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9세대 캠리의 휠베이스는 8세대 그대로이되 전장이 8세대 캠리 대신 40㎜ 더 길어졌다.

장르별로 다른 이유와 매력을 보여주는 토요타의 해머헤드 디자인 적용이 기대되는 또 하나의 차가 있다. 바로 6세대가 될 라브 4다. 혼다 CR-V, 기아 스포티지와 함께 글로벌 SUV 판매량에서 왕좌를 다투는 라브 4의 현행 5세대 디자인은 직선을 강조한 날카로운 느낌이다. 5세대의 후기형이 2021년에 나왔고 전기형의 시판이 2019년이었으니 늦어도 2025년 후반 정도에는 새로운 디자인 스케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BZ4X, 크라운, 프리우스 그리고 캠리에서 성공적이었던 해머헤드 디자인이 최고 인기 세그먼트 SUV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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