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고객들을 전동화의 세계로 인도할 스토리텔러
렉서스 RZ450e 시승 직전 탔던 차가 혼다 파일럿이다. 내연기관에서 가장 승차감이 부드러운 SUV와 전기차에 이어 가장 우수한 승차감을 자랑하는 차를 타게 됐다. RZ의 승차감은 지난 6월 인제스피디움에서 진행된 렉서스 일렉트리파이드 익스피리언스 데이에서 모두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 때는 30분 정도의 시승에 그쳤다. 보다 긴 시간 주행에서 과연 전기차의 약점이 어떻게 극복됐는지, 남은 과제는 어떤 것인지를 살펴봤다.
RX 3세대 3.5리터 하이브리드 느낌
전기차 고객이 아닌 ‘렉서스’ 고객을 위한 차
RZ450e의 가속 페달은 느낌은 묵직하다. 44.4kg∙m의 토크 전개 자체도 얌전히 전개되는 편이고 일반적인 전기차처럼 급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회생제동 시스템을 최대 강도로 한 원 페달 드라이빙 시 제동도 급격한 것은 아니다. 가든 서든 부드럽다. 전체적으로 주행 감각이 3.5리터 V6 엔진 기반 RX 하이브리드를 떠올리게 한다. 기존 렉서스 고객들이 이질감 없이 전기차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배려다.
가속 페달 깊이를 유지한 상태에서 노멀과 에코 모드를 전환해 보면 구동력이 전달되는 강도 차이가 느껴진다. 물론 노멀 모드로 주행한다고 해서 눈에 띄게 전기 소모량이 커지는 것은 아니다. 시내 주행의 경우에는 공조장치의 영향도 적다. 배터리 용량이 71.4kWh에 주행 가능거리가 377km이니 게이지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타도 된다. 시승차를 받을 때 충전량은 75% 정도였다.
전기차 특유의 강력한 가속 성능을 바란다면 이 차는 답이 아니다. 스포츠 모드를 사용하면 가속 페달에대한 답이 조금 빠르고 세밀하게 들어올 뿐 갑작스럽게 치고 나가는 느낌은 크지 않다. 이 역시 영락없이 이전 세대 RX 하이브리드다. 하지만 역으로 그런 호들갑스럽고 방정맞은 주행 감각은 제거하고 전기차 특유의 정숙성을 원하는 고객이라면 최적의 선택이다.
RZ450e의 재미는 다르다
편안하게 길을 장악하는 다이렉트4
지난 6월, 이 차의 개발을 담당한 렉서스의 개발 임원들이 한국을 찾았을 때, 강조하느 키워드가 운전의 재미였다. 혹자는 ‘렉서스가 무슨 재미냐’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차를 통해 구현하고자 한 재미는 독일 머신 마니아들이 생각하는 재미와는 다른, 안심과 안락감을 전제로 한 신뢰감에 가깝다.
다른 고가형 전기차들처럼 RZ450e 역시 전륜과 후륜에 모터가 장착된 듀얼 방식이고 이를 통해 4륜 구동을 구현한다. 렉서스는 이를 다이렉트4(DIRECT4)로 명명했다. 그러나 절대 동력 성능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다. 전륜 모터 150kW(204ps), 후륜 모터 80kW(109ps)로 합산 출력 312ps다. 전륜 모터 토크는 27.1kg∙m 후륜 모터 토크는 17.1kg∙m으로 기본 레이아웃이 전륜 구동이다. 물론 전후륜 각각 토크를 100대 0(뭔가 한문철 변호사가 생각나지만)이 가능하지만, 극단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즉 100대 0이라는 구동력 배분은 상징적이고 그보다도 전후의 토크 절충을 토해 주행 중 하중 이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다이렉트4 시스템의 본령이라 할 수 있다. 2,850㎜으로 휠베이스가 짧지 않지만 이어지는 고속 코너 구간에서도 후미의 흔들림이 적다. 2열에서는 안락감으로 느껴지는 특성이다.
다만 이러한 구동력 배분을 보여 주는 스크린이나 클러스터의 그래픽은 전혀 프리미엄 자동차답지 못하다. 토요타 라브4 하이브리드와 다를 것이 없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차라리 전사적으로 공모전이라도 해 보는 건 어떨까? 페이스리프트에서라도 좀 변화가 있길 바란다.
“답은 섀시에, 그것이 우리의 길”
RZ450e e-TNGA 렉서스의 고집을 증명하다
배터리 팩을 바닥에 깔아야 하는 전기차는 필연적으로 하부 구조가 바디 온 프레임과 같은 구조가 된다. 그래서 상하 충격에 대한 유연성이 떨어진다. 주요 고급 전기차 브랜드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에어서스펜션을 적용하지만 렉서스는 끝까지 섀시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 6월 한국을 찾았던 렉서스 카사이 요이치로 RZ 개발담당 부수석 엔지니어의 메시지였다.
사실 에어서스펜션은 고장이 많다. 그리고 한 바퀴 쪽이 고장나면 다른 바퀴들이 물리력에 대한 보상적인 대응을 하다가 같이 망가지기 쉽다. 또한 그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다. 렉서스는 고급브랜드이면서도 낮은 TCO(Total Cost of Ownership, 총소유비용)을 지향하며 RZ450e의 e-TNGA 플랫폼은 운전의 재미는 물론 그런 브랜드 철학을 반영한다.
특히 섀시 각 부분의 연결부에 보강재를 충분히 적용했다. 한 자동차 관련 전문가는 전기차 시대의 승부포인트는 부싱 부품이라고 강조한 바 있는데, RZ450e는 그런 지햐점에 부합한다. 동급 차종에 비해 다소 직경이 작은 18인치 휠을 적용한 것 역시도 하부에서 오는 충격을 완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달리는 고급 모텔
RZ450e 외관 & 인테리어
가장 좋았던 경험 중 하나는 스티어링휠의 감촉. 가죽의 감각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건강한 피부를 쓰다듬는 듯하다. 그냥 쓰자니 표면이 마모될까 아쉽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커버를 씌우자니 그 감촉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까봐 아쉬울 듯하다.
실내 공간에 비해 차가 작아 보인다. 날렵하고 스포티한 비례에 초점을 두었는데 전장이 중형 기준의 턱걸이라 할 수 있는 4,805㎜ 정도다. 전륜 휠 아치 위쪽에서 감겨 나와 프런트 도어 벨트 라인으로 올라가는 라인과, 프런트 도어에서 뒤로 이어지는 면 처리가 그림 같은 속도감을 보여준다.
실내 공간 폭이 좁다고 느껴지진 않지만 위에서 보면 전폭도 좁은 편이다. 그래서 운전이 쉽다. 시승차로 나온 것은 럭셔리 트림으로 루프 글래스에는 조광(오토 디밍) 기능이 있다. 쉽게 말하면 호텔 샤워실의 오토 디밍 유리를 생각하면 된다. 브랜드 플래그십인 LS가 있기 때문에 호텔보다는 고급 모텔에 가깝다고 해두자.
시트의 열선에는 온기가 고르고 포근하게 퍼진다. 장시간 운전해도 대퇴부, 허리, 목, 어깨 어느 부분에도 피로가 쌓이는 것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신형 RX보다도 안락하다.
오디오는 렉서스 차량에 적용되는 마크 레빈슨이 아니라 파나소닉이다.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토요타와 파나소닉의 관계는 생각 이상으로 견고하고 끈끈하다. 오디오파일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전기차에서 오디오 역량은 중요하다. 엔진 소리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던 다른 종류의 소음에 대응해 최적의 청음 환경을 만들어야 하며 전력 소비도 줄여야 한다. 파나소닉은 렉서스와의 협업을 통해 RZ450e에서의 사용 전력을 최소화하면서도 깔끔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렉서스다운, 간단하지만 세세한 배려도 곳곳에 보인다. 급속 충전용 충전기를 연결할 때 충전구의 아래쪽에 있는 별도 단자를 막는 커버는 끈에 매달려 대롱대롱하는 경우가 많은데, RZ450e는 안정적인 플립 형태다. 자잘한 생활 상처의 요인을 미리 제거했다.
충전은 대형마트에 있는 50kW급 충전기로 20분 정도, 18kWh를 충전했다. 대략 97km 정도를 주행할 수 있는 정도다. 불과 1년 전 전기차를 시승할 때보다 전기차 충전의 인프라는 압도적으로 확대됐다. 급속 충전 요금이 비싸긴 하지만 민간 사업자별로 앱을 통해 결제하면 할리적인 금액으로 충전할 수 있다. 또한 각 민간충전사업자들의 앱별로 충전 시설 안내도 잘 돼 있고 시스템 안정성도 높다. 더 이상 전기차의 구매 기준을 1회 완충 시 주행 거리에만 둘 이유가 없다.
물론 이런 매력들이 다른 브랜드의 전기차를 원하는 고객들을 완벽히 돌려세울 정도가 된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서두에 언급했듯, 이 차는 기존 렉서스 고객들이 거부감 없이 렉서스의 전동화 이행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다음에 이 전기차의 이야기를 긍정적으로 전하는 것은, 언제나 그랬듯 렉서스의 기존 고객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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